"OOO가 이번 인사 때 '시내 학교'로 간다던데", "축하할 일이네. 나는 언제쯤 여기서 벗어나려나. 이 동네 정말 지긋지긋해."
1980년대 초반 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초ㆍ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몇몇 선생님들은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이런 대화를 나눴다.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는 그저 '변두리 학생'이었고, 선생님들은 '시내ㆍ강남 학생'들과 비교하고 구분했다. 학생들이 떠들거나 시험성적이 좋지 않으면 "시내 아이들은 너희들과 다르다. 수준 차이가 난다"고 나무랐다. 기분이 언짢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없다"고까지 했다. 머리가 굵은 몇몇 아이들은 "돈봉투를 안 갖다줘서 그러는 거다"고 수군댔지만 많은 아이들은 "우리가 부족한 게 많아 선생님이 고생하신다"고 자책했다. 전교조도 없던,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는 너희들 대학 문턱도 못 넘는다. 여기서 1등 해도 시내 아이들 상대가 안된다. 서울대는 꿈도 꾸지 마라"고 했던 선생님도 있었다. 학생들의 경쟁심을 자극해 분발을 이끌어내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선생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면서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1등을 하는 것도 힘든데 막상 1등을 해도 원하는 대학, 명문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공부로는 희망이 없다는 의미였다. 무력감과 패배감에 한동안 의욕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살던 동네의 고교에 추첨으로 진학했다. 학교 수준이 크게 달라질 리 없었지만 다행히 중학 시절 선생님 말씀이 과장된 것임이 드러났다. 수준 떨어진다고 무시 받던 그 동네 고교에서도 반에서 1등 하면 서울대, 연ㆍ고대에 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쥐어짜 지독하게 공부를 시킨 덕분이기도 했지만 고교 평준화의 틀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도 외국어고가 있긴 했지만 위세가 요즘만 못했고, 일반고는 연합고사 성적을 토대로 우수 학생들을 골고루 배정받았다. 좀더 나은 교육 여건을 찾아 강남으로 이사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대치동에 '올인'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과외 금지가 풀린 직후라 사교육은 번성하기 전이었다.
30년이 흘렀다. 일반고인 모교의 서울대 입학생은 한해 1,2명으로 줄었다. 학급 1등이 가던 서울대에 전교 1등이 간신히 들어가게 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가 최상위권 학생을 싹쓸이하고, 이명박 정부가 '고교 다양화'를 내세워 만든 자율형사립고가 중상위권 학생까지 끌어가니 당연한 결과다.
어릴 적 동네 수준을 거론하는 선생님 말씀에 느꼈던 무력감을 요즘 대다수 일반고 학생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전국의 특목고 자사고 졸업생 수는 서울의 4년제 대학 정원에 육박한다. 특목고 자사고에 들어가지 못하면 산술적으로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은 여간해선 힘들다는 얘기다. 명문대 입학생 숫자로 고교 수준을 평가하는 건 천박한 짓이지만 전교 1등이 서울 중위권 대학에 간신히 입학하는 일반고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반고 교사들은 "한 반에 4~5명을 제외하면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 대다수"라고 탄식한다.
"1등을 해도 시내 학생과 경쟁이 안될 것"이라던 어릴 적 선생님의 말씀은 비교 대상이 특목고, 자사고 학생으로 바뀌어 예언처럼 맞아 들어갔다.
이런 상황인데도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말 자사고에 면접을 통한 학생 선발권을부여하는 내용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일반고 슬럼화'를 막겠다며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폐지했다가 자사고 학부모 수천명이 집회를 열고 반발하자 불과 두 달 만에 번복한 것이다. 상위 50% 중에서 추첨으로 뽑던 자사고가 면접을 거쳐 뽑게됐으니 오히려 선발권은 강화된 셈이다.
전국의 자사고는 49개, 일반고는 1,524개다. 공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이 누구를 향해 있는 지 분명해졌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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