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가 참 좋다. 작년에는 25편을 관람했고 올해도 지금까지 32차례 영화관을 들락거렸으니 영화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팬 자격증은 받아도 될 듯싶다. 최근에는 우주세계를 묘사한 '그래비티'를 감상했다. 다른 SF영화와는 달리 환경재난이나 외계인 침공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렸는데 우주의 아름다움과 공허함,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올해 본 영화 중 10편은 SF로 분류될 수 있다. 특별히 SF영화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세계적인 추세여서인지 SF영화를 빼곤 올해 영화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SF영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서적도 여럿 출간되었다.
필자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SF영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영 흥미가 없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있다 보면 거기서 탈출하고 싶어 영화구경을 가곤 하는데 굳이 영화를 보고 나서까지 과학기술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 절로 과학자 본성이 나온다.
저걸 직접 촬영할 수는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었지? 저런 일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까? 저런 기계를 만들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SF영화의 공통점은 미래 세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과거 SF영화에서 묘사했던 미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현재 영화에서 상상하는 미래는 우리 후손들이 살게 될 세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순수예술 분야에서도 미래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태동한 화풍인데, 과거의 예술을 포함해서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치자는 시도였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정적인 캔버스에 동적인 속도감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미래주의는 미술만이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이루면서 미래의 건물, 미래의 도시상을 제시했다. 오늘날 SF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빌딩이나 도시환경은 100년 전 미래주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여러 가지 직종이 있지만 대부분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반면에 예술과 과학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만들어 나가는 분야이다. 우리사회를 큰 수레에 비유한다면 예술은 왼쪽 바퀴, 과학은 오른쪽 바퀴다. 두 바퀴가 미래를 향해 같은 속도로 굴러가면 앞으로 잘 전진할 수 있다. 수레의 바퀴가 축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예술과 과학도 소통과 융합이라는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소통과 융합은 여러 형태로 가능하다. 사실, SF영화도 과학과 예술이 융합된 결과다.
박물관은 과거를 수집하고 해석하고 진열한 곳이다. 과학관이나 사이언스뮤지엄도 마찬가지다. 단지 콘텐츠가 과학과 기술이라는 점이 여타 박물관과 다를 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아직 과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미래의 세계를 어떻게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줄까? 전 세계 과학관들의 고민이다. 결국 대다수 과학관은 과학의 위대한 업적을 설명하든지 과학의 원리와 현상을 보여주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여기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바로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4회 국제SF영상축제였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SF영화 시사회에 그치지 않았다. SF영화를 중심으로 하여 강연회, 공연, 공모전, 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로 엮어졌다. 관람객은 영화 감상만이 아니라 영화 속에 담긴 각종 과학적 이슈를 전문가의 강연을 통해 배우고 첨단기술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의 몫이 아니다. 과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면 과학자가 제시하는 미래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 일반대중도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창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국제SF영상축제와 같은 과학문화행사에 참가하다 보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벌써부터 2014년 가을 국립과천과학관 일대에서 펼쳐질 제5회 국제SF영상축제가 기다려진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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