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5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하면서 "북한이 민주노동당 창당 시절부터 세력 확대, 당권 장악에 관한 지령을 계속 하달했고 이것이 상당 부분 실현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검찰이 기소한 일심회 사건 등 여러 간첩 사건을 예로 들며 통진당과 북한의 연계를 강조하는 동시에 당이 뿌리부터 '종북ㆍ위헌정당'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해당 간첩 사건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법무부의 이 같은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법원의 판단과는 정반대거나 법원이 위법성에 대해 아예 판단하지 않은 내용을 인정된 사실로 호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먼저 법무부는 2003년 당시 민노당 고문이었던 강모씨의 간첩 사건을 통해 민노당 창당 과정에 북한이 깊숙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1998년 11월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준비위원회 결성을 활발히 하라'고 지시했고, 2000년 4월에는 '민노당을 해체한다고 하는데 잘 나가도록 뒤에서 채찍질(하라)'는 지령을 강씨에게 내렸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어 강씨가 2000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유효투표수 2% 확보를 실패하는 바람에 등록이 취소됐고, 5월에 재등록을 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지령이 그대로 현실화됐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법원은 강씨에 대해 간첩죄의 유죄 선고와 별도로 판결문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으로 보이는 민노당 관련 주요 인사의 포섭 활동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강씨가 민노당 인사들을 포섭할 능력도 없었고, 그럴 지위에 있었는지, 포섭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종북세력이 민노당의 서울시당과 정책위원회를 장악하는 데 북한이 '일심회'를 통해 개입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간첩단 일심회에 북한이 정책위 의장으로 이용대, 문성현을 당대표로 하라고 지령을 내렸고, 이들이 실제로 당선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북한의 지령에 의해 종북 세력이 민노당을 장악했는지' 여부를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민노당 등의 내부 인사들에게 접근하는 등 노력을 했다"고만 했을 뿐이다. 법원은 오히려 법무부가 간첩단이라고 적시한 일심회는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1년 6월 당 강령을 개정할 때 '왕재산 간첩단'에 대한 북한의 지령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반영했고 그 해 진보정당 3당 대통합 역시 북한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 또한 법원이 선고한 판결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법원의 판단에 비춰보면 통진당 전체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 세력에 포섭이 된 '위헌 정당'이라는 법무부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해 향후 헌재 재판 과정에서도 치열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