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정당 해산 결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건이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해외 사례와 함께 2004년 이뤄진 연구용역 결과를 중점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정당해산과 관련해 발간한 유일한 보고서인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는 한국공법학회가 작성한 것으로 공동연구자는 한국교육법학회 회장인 이성환 변호사,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석윤 서울대 법학연구소장, 성선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등 4명이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심판 사건 심리 과정에서 다뤄질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정당 목적 위헌성 판단 근거는"강령外 당 주도 인물의 글ㆍ연설도 근거로 활용"
헌법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과 활동이라는 두 줄기가 위헌정당 판단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법무부는 5일 "통진당의 강령, 강령해설서, 논문 등을 분석했다"고 밝혔고 일각에서는 "표면적 표현만으로 목적의 위헌성을 판단할 수 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고서는 실제 강령, 연설, 교재, 발간물 등 문서가 폭넓게 판단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정당을 주도하는 인물이 정당의 정치적 이념에 대해 서술한 글, 정당 지도자의 연설, 당원교육교재와 정책선전자료 등을 근거로 정당의 목적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내용이 증명될 수 있다면, 정당이 비공개로 추구하는 목표나 이미 문서로 표명된 목표를 사실상 변경하는 경우도 판단 근거가 된다"는 견해를 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석기 의원 등 통진당 관계자들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회합 녹취록의 발언 내용도 헌재에서 통진당의 목적을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목적만 있어도 해산 대상인가"폭력행사나 조종에 의한 행위가 존재해야"… RO활동으로 인한 위험 입증이 관건
보고서는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목적을 실현하려는 행위'가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고 봤다. 연구진은 "단지 주관적인 의도에 그치지 않고 목적을 추구하는 객관적인 강도를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진당의 활동이 실질적 위험을 유발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조직적인 폭력 동원을 통해 민주적 기본질서를 저해할 때만 정당해산이 된다는 견해도 있고,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면서도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에서 일반적 관용의 원칙상, 폭력 행사나 폭력 행사의 조종에 의한 행위가 존재해야 정당해산의 요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무부는 통진당 주요 간부로 구성된 RO 회합을 통해 무장봉기를 선동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연구에 참여한 정태호 교수는 "RO 활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진당의 조직적 활동으로 인한 위험이 모두 증거로 입증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결국 헌재 심리는 형사소송을 방불케 하는 증거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도 고려 대상이다. 연구진은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경우에는 굳이 해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정당해산은 단지 헌정질서를 비판하거나 다른 질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RO를 곧 정당의 활동으로 볼 수 있나"개별 행위도 적극 대처 안 했으면 당 행위 간주"… RO를 黨행사 규정한 통진당 불리
가장 논란이 큰 쟁점은 일부 당원과 소속 의원의 행위가 잘못됐다 하더라도, 이를 정당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이나 RO 등 일부 조직원의 행위를 곧 당 전체의 행위로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연구진은 "정당에 속한 기관의 행위는 곧 정당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며 "당 지도부, 주요 당직자, 정당의 출판 관련 조직, 지구당 등 지역 조직의 행위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의원 등 통진당 간부들 활동의 위헌성이 입증될 경우 통진당에도 책임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 당원이 정당 노선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한 행동이라면 정당해산과 연계될 수 없지만 이 역시 당이 적극적인 대처를 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정당 행사에서 당원이 민주적 기본질서 저해 행위를 했는데도 당이 이를 의식적으로 묵인하거나 지원할 때 또는 비판ㆍ출당 등 가능한 조치를 하지 않을 때는 그 행위가 정당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RO 회합을 당 행사로 규정하고, 행사의 성격을 옹호해 온 통진당에는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해석이다.
정당해산 제도의 궁극적 목적은?"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 중점 둬야"… 청구 기각되면 "野탄압" 비난 소지
연구진은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정당해산 제도는 정당의 보호를 위한 제도라는 점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당해산에 관한 규정이 없어 1958년 조봉암이 이끌던 진보당이 공보실장의 등록취소 처분으로 강제 해산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정당을 해산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정당해산 조항은 정당특권을 규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정당해산 제도가 헌법을 보호하는 데 효율적인 수단인지는 의문이 존재한다"며 "법무부가 통진당의 위헌성 입증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려 했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청구 기각 시 통진당에는 면죄부가 부여되고 법무부는 야당 탄압에 제도를 악용했다는 정치적 비판을 받게 될 소지가 있다"며 "그만큼 법무부의 입증 책임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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