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자기 의지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거 아닌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마음 약한 사람들이 걸리거나,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1은 중독이라는 뇌의 병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뇌의 쾌락중추와 도파민 회로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지 못한다.
이들은 대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못하고 고립되고 외로운 인생으로 빠져든다. 방과후에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퇴근길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던 평범한 젊은이들도 중독이란 병에 걸리면 사회적으로 단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지난 5월 진단체계를 새롭게 수정(DSM-V)했는데, 앞으로 연구돼야 할 질환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을 선정했다. 인터넷 게임과 행위중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2005년 1조4,397억원을 기록한 한국 온라인 게임시장은 내년에는 11조7,89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 결과와 향후 어떤 대책을 세워나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은 '리그 오브 레전드' 라는 외국게임이 점유율 42.27%로 64주째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12세 이용가능 등급으로 분류돼 있는 이 게임은 미국의 라이엇 게임즈가 개발한 AOS(진지점령)게임으로 전략 시물레이션에 RPG요소가 가미된 형식이다. 3:3, 5:5 같은 멀티플레이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팀에서 한 명이 취약하면 바로 승패가 기울어진다. 이때 대부분 가차없이 욕설이 오가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한번 시작한 게임을 그만 둘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 게임 개발자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아무리 멋진 게임을 런칭해도 한가지에 빠져있는 유저층이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번 점유율 우위를 점한 라이엇 게임즈는 게임 월드컵 등 국내외 e스포츠행사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며 국내 게임 개발자들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막아서고 있다. 한가지 게임에 빠져 있는 중독 현실이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관리는 미래창조과학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각기 실태조사를 하는 등 중구난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 치료해야 한다는 뜻은 같지만 부처간 소통부족과 중복 사업으로 인해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얼마 전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등은 이런 취지의 기본법인 '중독 관리법'을 발의했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를 게임 규제나 부담금을 징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강력한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6월 박성호의원(새누리당)이 발의한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상생 콘텐츠 기금 설치를 위해 문체부 장관이 콘텐츠 유통 매출의 5% 범위에서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이번 발의된 '중독 관리법'과는 관련이 없다.
과거 정부는 2004년부터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논의했지만 2006년 4월이 돼서야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미 2004년부터 '바다이야기','황금성'등의 사행성 게임기가 전국에 배포됐고 이 때 급증한 도박중독 환자들과 불법 도박업체들이 현재 100조의 지하경제 규모로 성장해버렸다. 뒤늦게 법이 통과돼 사행성 게임을 규제했지만, 이미 수많은 가정이 도박의 피해를 본 뒤였다. '바다이야기'의 역풍을 맞은 국내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2005년에 1조원에 이르던 시장 규모가 2009년 이후 618억원으로 줄어들어 사실상 산업 기반이 와해됐다.
국가가 중독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이 게임산업과 국민 건강은 동시에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10년 후에, 2013년을 되짚어보며 '그때 중독을 관리했었더라면'하며 후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ㆍ한국중독정신의학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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