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한'의결권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투자기업 주식가치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재계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재벌 구조개혁에 나서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6일 보건복지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에는 향후 5년간 국민연금을 꾸려갈 계획인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했고, 다음달까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기금운용위원회 심의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두 방안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한 의결권을 100% 행사한다는 원칙과 함께 ▦의결권행사지침 구체화 ▦주주대표소송을 위한 절차ㆍ기준 강화 ▦책임투자 원칙 명문화 등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해 주주로서의 역할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영간섭이 아니라 연금 가입자인 국민에게 보다 높은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 기업의 장기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의사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에 대한 대표적 규제장치인 '10%룰'도 이미 완화된 상태여서 향후 국민연금의 국내 상장사들에 투자는 한층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0%룰이란 특정기업에 대한 지분율 10% 이상인 주주는 단 1주를 매매하더라도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했던 규정인데, 8월29일부터 보유지분 즉시 공시 의무가 완화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에 대한 제약이 크게 완화됐다. 그 결과 9월말 현재 국민연금이 10% 넘게 사들인 종목은 삼성물산(12.14%), LG상사(10.68%) 등 18개나 된다. 이지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주식투자 목표 비중을 채운다면 연내 3조2,000억원의 추가 매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의 국내증시 투자 증가와 함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이미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삼성전자(7.43%), 포스코(6.14%) 등을 비롯해, 2대주주인 현대차(6.99%), 현대모비스(7.17%), 기아차(6.01%) 등 주요 대기업들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고 있는 처사"라며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들 기업의 우려는 국민연금이 이사선임 등에 개입하면서 대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식의결권을 강화하는 것이 자칫 기업가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 권리를 행사해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가입자인 국민의 재산을 깎아먹는 행위"라며 "대다수 선진국 연기금들은 적극적으로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투자기업 중 문제기업을 작성해 공개하고 있고,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도 이와 유사한 '워치 리스트' 등을 만들어 경영진의 사회책임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위해 자금운용의 독립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입김이 작용할 것이란 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전문적인 투자결정이 이뤄지기 위해선 기금운용 조직이 지금처럼 산하기관이 아닌 독립 기관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7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로 상설 독립화하는 방안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관심부족으로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지금처럼 복지부가 아닌 대통령 산하기구로 만들어 전문성과 함께 독립성이 강화돼야 의결권 행사도 자유롭게 이뤄지고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