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6일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의 주심을 이정미 재판관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들어갔다. 참여정부 시절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심판, 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사건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맡아 이목을 집중시켰던 헌재는 이번 사건으로 다시 헌정사를 바꿀 수 있는 심판자 역할을 떠안게 됐다.
특히 법리 해석과 적용이 우선시되는 일반 재판과 달리 헌재 사건은 재판관의 성향이 판단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9명의 재판관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는 이날 사건 배당 내규에 따라 전자추첨을 통해 주심을 정했다고 밝혔다. 애초 재판관 전체 협의를 통해 주심을 정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일반 사건과 똑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배당한 것이다.
당장은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물론 9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여하는 평의에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리는 헌재 재판의 특성상 주심의 역할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주심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합의와 공개변론을 진행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헌재는 이번 사건 검토를 위해 4, 5명의 연구관으로 별도의 특별팀을 꾸렸으며 이 역시 이 재판관이 주도하게 된다.
재판관 중 유일한 여성인 이 재판관은 비교적 진보 성향으로 법조계에서 평가 받는다. 이 재판관을 지명한 이도 진보 성향의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었다. 이 재판관은 헌재가 지난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교육감직 상실로 이어진 '사후매수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위헌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주 노동자가 출입국관리소의 긴급보호명령 및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긴급보호는 긴급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강제퇴거는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으로 보인다"며 소수자 편에 섰다. 이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많이 내는 재판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후매수죄 사건에서 이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냈던 김이수 재판관도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야당의 추천을 받은 김 재판관은 과거 민청학련 사건으로 64일간 구금이 됐다 석방된 경력도 있다. 김 재판관은 판사 재직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는 "검찰이 사실을 왜곡 발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많이 내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박한철 헌재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국가의 안보와 공공질서'를 최우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공안 검사 출신인 이들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안 재판관은 2006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시절 '일심회'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법무부는 정당해산 심판 청구안에서 북한이 통진당의 활동에 개입한 주요 사례로 일심회 사건을 들었다.
나머지 다섯 명의 재판관에 대해서는 성향을 나누기가 애매하다는 평가다. 대부분 재판관이 된지 1년 남짓 지난 데다, 최근 들어서는 헌재가 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다룬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건 판단을 통해 성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사건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일수록 재판관들의 기존 성향은 오히려 판단과 결론에 무의미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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