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통일된 한국사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앞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국정교과서 체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교학사 교과서 논란 이후 보수성향의 인사들이 잇따라 국정교과서 전환을 주장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여기에 화답하는 일련의 양상은 잘 짜인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현재의 검정 체제를 국정 체제로 되돌리기 위한 정치적인 물꼬 트기로 여겨진다.
역사학자들의 우려를 빌릴 필요도 없이 한국사교과서의 국정 전환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한국사교과서가 국정으로 전환된 시기는 민족주체사관을 내세운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다. 당시 역사학자와 현장 교사들은 반대했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후 권위주의 정권 정당화와 일률적인 역사인식 주입 등의 비판이 제기되면서 40년 만인 2010년에야 비로소 검정 체제로 돌아왔던 게 그간의 과정이다.
학문의 자유와 교육자치의 정신을 존중하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대다수 선진국의 교과서 정책이다. 실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국정교과서를 발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런 추세에 맞춰 우리도 그 동안 꾸준히 국정을 검인정으로 전환해 2011년 말 기준으로 초ㆍ중ㆍ고 교과서 600권 중 국정은 초등학교 교과서를 포함해 6%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사교과서의 이념적 논란 탈피를 주장하지만 국정으로 바뀐다고 이념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려고 해 혼란이 더욱 커질 개연성이 높다. 이념적 편향성 시비와 정책 홍보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교과서 발행체계에서 드러난 문제는 검정 과정에서의 소홀함 때문이지 검정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검정 체제를 원칙대로 운영했으면 교과서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정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정 체제로 회귀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