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선 신사임당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통적 현모양처의 귀감인데, 가출해 돌아오지 않는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분명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5만원권 얘기다.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5만원권이 시중에 풀린 뒤 한은 금고로 돌아오지 않는 비중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 하지 않았나. 잡으려면 꼭꼭 숨고, 풀어주면 슬그머니 다가서는 여인의 심리 같은 경제논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 한은의 전체 지폐발행 잔액 중 5만원권 비중은 지난 9월 현재 66%로 압도적이다. 2년 전에 비해 13%나 늘었다. 5만원권이 첫 발행된 2009년 9월 이후 지난 4년간 발행액 규모는 35조원대로 무려 7억여 장에 달한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유통돼 은행 금고로 돌아오는 환수율이 올 들어 급감했다.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로 늘었다가 올해 48.0% 로 뚝 떨어졌다. 갖가지 추론이 횡행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환수액이 개인 등 민간경제에 잠겨 있거나 은밀히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 현금경제가 확대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사과 한 상자에 1만원 권으로 5억 원이 들어가지만, 5만 원권으론 25억 원이나 된다. 현금보유 성향이 느는 데는 주식ㆍ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투자처가 마땅치 않고 저금리로 현금보유의 기회비용이 높아진 원인도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해 소득이나 지출을 감추려는 심리가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정책 목표는 지하경제 양성화인데 현실은 반대로 가는 셈이다.
▲ 2007년 11월 5만원권 지폐 도안이 신사임당으로 낙점되자 논란이 거셌다. 현모양처란 선정 배경이 현대 여성상과 다른 가부장적 성차별이라며 여권운동가들은 반발했다. 2년 후 시중에 나오자 신사임당 영정이 당시 대선후보로 주목 받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코에서 입술 모양까지 닮았다며 또 논란이 일었다. 5만원권과 박 대통령의 인연이 이런저런 이유로 깊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장학만 논설위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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