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11월 7일] 과거사와 안보는 다르다

입력
2013.11.06 12:01
0 0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미국 일본의 안보협력위원회(2+2) 회담에 참석했던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2차 대전 때 사망한 일본 병사들의 유골이 안치된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에 헌화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고집스럽게 참배를 강행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인근의 비종교 추도시설을 찾은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를 미국이 부정했다 해서 떠들썩했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날 헌화는 의미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의 행태를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2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미국이 한국 등의 반발을 의식한 상징적 제스처였던 것이다. 회담의 목적은 일본의 반성이 아니라 일본의 팽창이었다.

미국의 '일본 역할론'은 뿌리 깊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번 나온 아미티지 보고서의 핵심은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일방어(MD)체제 강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제한 해소 등이 각론으로 거론됐다. 모두 미국이 먼저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들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했던 아미티지를 중심으로 초당적 전문가들이 작성에 참여한 보고서는 미국의 아시아 외교전략으로 채택됐고, 골간은 지금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국방비 감축 등은 이런 기조를 더 두드러지게 한 '중요한 추가적' 요인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미일의 유착을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욕에서 찾는 것 역시 본질을 흐리는 시각일 뿐이다.

이제 한일관계, 정확히는 한일 갈등구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미국에 가서 "집단적 자위권이 한반도와 주권에 관련된다면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 때 우리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해 '제한적 용인'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반도에 무력 개입하는 것은 미일 안보조약이나 개별국가의 자위권 측면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미국 정부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미군이 공해상에서 공격받는 등 특정한 상황에서만 행사되도록 조율할 것"이라는 입장을 우리측에 통보했다고 한다. 선제타격을 허용하는 적 기지 공격력의 보유를 요구하는 일본에 미국이 반대하는 것도 한 예다.

핵심은 현실성 없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내세워 소모적 논란을 벌이는 게 아니라 달라진 안보현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이다. 지금까지의 한일갈등은 위안부 독도 강제징용 야스쿠니 등 모두 과거의 일이었다. 역으로 보면 현실과 미래라는 명분으로 양국 갈등을 극복해 올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일본이 현실이자 미래인 안보에 개입하는 상황이 왔고, 안보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뒤흔드는 현안이다. 일본의 안보를 과거사와 결부시키려는 우리의 입장이 국제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보면 당연하다. 미국은 '한국이 안보에서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재연기를 요구하면서도 MD나 방위비 분담 등 감당해야 할 안보 부담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일본의 안보역할론도 들어가 있다. 호주 영국 필리핀 등 일본의 안보역할을 주문하는 세계의 목소리도 커지는 추세다. 이를 외면하면 우리만 더 고립될 수 있다.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과거사와 안보를 분리해 대응하는 게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이다. 미일의 안보논의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이익을 관철시키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해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재추진하고 한일ㆍ한중일 정상회담도 해야 한다. 국민 설득이 어렵겠지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거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명분도 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