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 때 담아 주는 봉지를 plastic bag이라 한다. 비닐(vinyl)은 plastic polymer의 일종이고 vinyl은 곧 PVC(Poly Vinyl Chloride)을 가리킨다. Vinyl plastic이라고 말하면 화학적 성분을 일컫는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Plastic or Paper'라는 질문을 받을 때 'Plastic, please'(저는 비닐 봉지에 넣어 주세요)라고 하는 건 그 봉지의 구체적 화학적 성분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휘의 쓰임과 어휘력 얘기를 할 때 우리는 곧잘 몇 만 단어쯤 알까 궁금해한다. 이는 오해와 편견에서 나온 관념일 뿐이다. 가장 빈도 있게 쓰이는 75개 단어만 알면 일상 대화의 40%가 가능해지고 200 단어로 50%를 커버할 수 있다. 524단어를 알면 60%를 소화하고 1,257단어를 알면 70%, 3,000단어를 알면 80%, 7,500단어를 알면 90%, 1만4,000단어를 알면 95%, 2만5,000단어를 알면 99%를 소화할 수 있다. 유명한 Pareto의 법칙처럼 영어에서는 단어 전체의 20%만 알면 80%의 영어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단어는 핵심 어휘를 의미하지 막연하게 늘어 놓는 단어 수가 아니다. 적어도 원어민들이 일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어휘 수를 말한다.
New York Times나 Washington Post의 사설을 분석해 보면 400단어 범위에서 핵심어와 주제어를 오가며 반복과 중복을 피하면서 훌륭하게 논지를 서술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백과사전이나 참고서의 설명 기준도 어려워야 1,000 단위 안팎에 머문다. 중요하고 자주 쓰이며 필수 어휘를 잘 사용하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Labov, Fisher, Perelman 등의 학자들은 중산층일 수록 '일상언어' (Casual speech)보다는 '신중한 언어'(Careful Speech)의 사용 빈도가 높고 가계 수입이 많을 수록 선별적 어휘력이 높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중학교 수준의 1,500 단어나 고교과정의 4,000단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원어민의 일상적인 사용 빈도와 궤를 함께하는 단어일수록 좋을 것이다. '쉬운'(easy)' 이해보다는 '천천히, 조심조심, 여유를 갖고'(easy) 뜻을 아는 것이 어휘 실력 향상에 있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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