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에 가봐야겠어."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였다. 아니 아버지가 다니는 '산책'이 문제일수도. 다짜고짜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운 그녀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사는 동네로 차를 향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아버지를 온전히 솔직하고 올바른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했던 당시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한 표정으로 건강에 좋지 않으니 삼가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산책'을 그만두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산책'을 완전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주장했다."
산책을 '취미 생활로 봐달라'는 아버지와 산책은 다분히 핑계일 뿐 '같은 마을에 혼자 사는 노부인과 눈이 맞았다'고 믿는 딸, 그리고 그 둘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위이자 남편이 올 봄호에 손보미가 쓴 단편소설 의 등장인물이자 내용이다. 하지만 책 속의 '산책'은 그 산책이 아닌 의심과 거짓말의 기원이자 종착지다. 산책 자체를 의심하지만 표면적으론 혼자 사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며 산책을 그만두라는 딸에게 "저기 말이다. 저기 저 놀이터에,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젊은 부부가 찾아온다. 단순히 젊은 부부가 아니라, 아주 어린아이들이지. 정말 아직 아기들이야."라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엿듣는 일이 산책의 근본 이유라고 설명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확신하는 딸의 심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얽혀 있다.
손보미의 단편소설이 늘 그렇듯 진실과 거짓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의 단편소설 '담요' 속 총기 사고나 '폭우'에 등장하는 화재의 진짜 원인조차 작가는 철저하게 숨긴다. 아버지가 정말 산책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것인지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왜 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젊은 부부의 남편이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집'의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는 이유로 말한,"할머니는 (초인종을 누른) 내게 문을 열어주고 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돌아가신 거야"라는 경험담은 결정적인 단서다. 얘기를 듣던 아내는 "세상에, 그 대사는 우리가 자주 보는 미국 시트콤에 나왔던 거잖아.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라며 황당해한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도 "나도 그 시트콤을 알아.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랑 즐겨 보던 시트콤이니까. 지금 스무 살짜리 여자애는 그런 내용을 알 수가 없어…"라며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딸 아니 아내의 이런 확신은 묘하게도 남편에게 이어지는 듯하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그렇다고 절대 말하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건네는 아내의 몇 가지 질문들은 의심과 거짓말의 묘한 경계로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정작 그녀의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게.
"자기는 오늘 뭐했어?"
"그냥 집에 있었어."
"하루 종일?"
"오늘은 강의도 없고, 그냥 집에 있고 싶었어."
"오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는 거지?"
◆손보미
1980년 서울 출생. 국어국문학 전공. 2009년 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가 당선돼 작품 활동 시작. 첫 소설집 출간.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