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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너릿재 옛길~화순 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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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너릿재 옛길~화순 적벽

입력
2013.11.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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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하나를 둘이서 나눠 쓰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시절, 부잣집 아이와 짝이 되면 그랬다. 책상 한가운데 좍 삼팔선이 그어지고, 그 아이 자리엔 비싼 샤프와 맛난 소시지 반찬이, 내 자리엔 몽당연필과 쉰 김치통이 놓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렁그렁 고인 서러움이, 커가면서 된통 메마른 사람은 되지 않도록 해준 젖은 거름이 된 것 같다. 너릿재 옛길을 넘는데 새록새록 그 기억이 떠올랐다. 너릿재는 광주와 화순 사이에 걸린 고개다. 돈이 있는 광주 쪽은 깔끔한 포장도로이고, 없이 사는 화순 쪽은 먼지 날리는 자갈길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어느 부잣집 녀석이 고갯길 가운데 금이라도 그어 놓은 것일까. 가을 화순 가는 길, 폭폭 낙엽 밟히는 자갈길의 촉감이 어린 날의 기억처럼 보드라웠다.

발아래 밟히는 사연들, 너릿재 옛길

전라도에 이런 욕이 있다. '칼 들고 너릿재나 갈 놈'. 지금은 너릿재라는 지명이 '터널'과 붙어 한 덩이로 쓰인다. 광주에서 화순 거쳐 순천, 보성, 장흥으로 이어지는 22번 국도가 너릿재터널을 통과한다. 1971년 터널이 뚫리기 전엔 사람들이 재를 넘어다녔다. 해발 240m 고갯길. 원체 험했던 길인데다 눈이라도 제법 와볼작시면 한 달씩 길이 끊기기도 했다. 그래서 대낮에도 도둑이 끓었다. 이 지역에선 어려서 행실이 좋지 않으면 '도둑이나 될 놈'이라는 뜻으로 '너릿재나 갈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비슷한 욕을 서울에서 찾자면 '버티고개 가 앉을 놈'쯤 되겠다.

너릿재 옛길은 잊혔다. 지금도 차가 다니는 길이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꾹 한 번만 밟으면 통과할 수 있는 터널이 생긴 뒤 구불구불 재를 넘는 차는 거의 없다. 너릿재의 광주 쪽 들머리,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서 동네 할머니를 붙잡고 물었다. "아고- 나가 시집올 때 넘어온 길인디, 이젠 없어져 부렀을 것이여" 한다. 남아 있다. 광주에서도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산책로, 또는 무척 호젓한 자전거 주행 코스라고 소개하는 게 옳겠다. 조붓하고 고운 길이다. 봄이면 왕벚나무 꽃비 내리고 가을이면 당단풍나무 빨갛게 물이 든다. 그 풍경만으로도 가볼 만하다. 헌데 이 길에 쌓인 사연이 솔찬했다.

옛 문헌에 너릿재는 판치(板峙)로 나온다. 오르내리는 비탈은 험한데 꼭대기가 널(板)처럼 평평한 데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고, 도둑이 많아 죽어서 널에 실려 내려오는 사람이 줄을 이었대서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너릿재 정상 자그마한 공원에 이 고갯길의 내력을 새긴 돌판이 있다.

기묘사화 때 이 고개 넘어 유배지인 능주(현재 화순의 일부)로 간 조선의 이상주의자 조광조(1482~1519)는 뒤따라 고개를 넘어온 임금의 사약을 받들어야 했다. 백여 년 전 갑오년 겨울 동학농민군은 너릿재를 넘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했다. 해방 이태 뒤, 광주 시내로 행진하던 화순탄광 노동자들은 여기서 미군에게 학살됐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피아 식별은 무의미했다고 전해진다. 이상은 역사책에 실려 있다. 여태 제대로 못 실린 사연도 있다. 33년 전 봄의 일이다. 11공수여단이 터널을 틀어막고 이 고개에 매복했다. 광주 외곽에서 트럭을 타고 전남도청으로 향하는 '폭도'들이 군인들의 가늠쇠 끝에 걸렸다. 그리고 꽃 같은 목숨이 스러졌다.

늙은 느티나무 그늘 그저 푸근한 고갯길에 얽힌 사연이 어쩜 이리도 아픈 것일까. 걷다 마주치는 이야기들이 마치 침묵의 멈춤 장치 같아서, 이 길을 걷는 누구나 잠시 섰다가 가게 한다. 다시, 야생화와 새소리와 피톤치드로 가득한 숲길을 걸었다. 정확히 시군의 경계를 기준으로 광주 땅 너릿재와 화순 땅 너릿재의 풍경이 갈라졌다. 광주 쪽은 벤치도 때깔 나고 풀나무의 이름을 써서 붙인 꼴도 제법이다. 화순 쪽은 그냥 방치해둔 듯하다. 그 수수한 모습이 훨씬 정겹다. 타박타박 화순 읍내를 향해 걸었다. 나뭇잎 사이로 터져 있는 하늘, 파란 가을이 일렁이며 만드는 그림자가 머리에 내려와 앉았다.

김삿갓의 방랑이 멎은 자리, 화순 적벽

여기저기 화순 땅을 해찰하듯 돌아다니다 적벽으로 향했다. 화순 적벽은 낯설다. 이 지역 토박이들이나, 그것도 나이가 쉰은 넘어야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그러나 일제 시대 당당히 '조선 10경(景)'의 하나로 꼽혔던 명승지다. 섬진강 지류의 하나인 동복천 상류에 창랑천이 있다(있었다). 이 개울이 옹성산(572m) 서쪽 기슭 약 7㎞를 감입곡류하며 깎아 놓은 수려한 절벽이 적벽이다. 기묘사화 때 동복(현재 화순의 일부)에 유배된 최산두(1483~1536)가 이곳의 풍광을 보고는,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의 적벽(赤壁)과 맞먹는다 하여 이름을 붙였다. 절벽의 경관이 워낙 웅장한(웅장했던)지라 노루목 적벽, 보산 적벽, 창랑 적벽, 몰염 적벽 등 4개의 절벽군으로 나뉜다(나뉘었다).

괄호 안의 과거형에서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은 물에 잠겼다. 1970~80년대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최고 높이 100m에 이르던 절벽이 절반 이상 수몰됐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적벽의 규모와 풍광도 다른 곳에 빗대어 뒤질 것이 결코 없다. 그런데도 이리 낯선 것은, 4개의 절벽군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노루목 적벽의 출입이 차단된 탓이다. 동복댐이 가둔 물은 광주시민들이 마시는 물이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꽁꽁 묶여 있어 들어가 보려면 광주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절차가 까다로워 정작 화순군민들은 제 땅인데도 가볼 생각을 않고 산다. 그런데 일 년에 딱 하루, 음력 시월 초하루 무렵에 문을 열어준다. 주민들은 이날 고향 마을 기슭인 적벽 아래 모여 잔치를 연다. 그게 지난 토요일이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라믄 안 되지라. 여가 우리가 나고 자라고, 지금도 엄연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땅인디…."

화순군 이서면 번영회장 오병식씨에 따르면 머잖아 적벽 출입이 가능해질 것 같다. 광주시와 한창 협의 중인데, 일주일에 두세 차례 한정된 인원에 한해 탐방을 허용할 것이라고 한다. 상수원보호구역 입구에서 노루목 적벽을 마주 보는 망향정까지는 약 5㎞의 임도다. 여기 탐방로를 설치하고 오염 대책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년 중엔 가능할 거라고 오씨는 얘기했다. 그 말이 희망으로만 끝나지만 않는다면, 간간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저건 아마 해외 로케이션일 거야…' 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장면 속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쌍화점'에서 임금(주진모)과 호위무사(조인성)가 등을 맞댄 채 자객들과 싸우던 강가, 그 수려한 풍경이 지금 얘기하고 있는 곳이다.

이 사람을 빼놓고 얘기를 끝낼 뻔했다. 이름을 붙인 건 최산두이지만 역시 적벽은 김병연(1807~1863)이 있어 헛헛하지 않다. 방랑시인 김삿갓 말이다. 천지간에 얽매임과 머무름 없었던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 바로 여기다. 젊어서 두 차례 적벽에 왔던 그는 나이 쉰 살에 방랑을 멈추고 동복에 정착했다. 그리고 6년 뒤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남아 있는 몇 가닥의 시로 그가 적벽에 사로잡힌 까닭을 미뤄 짐작하는 것은 난망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 어떤 방랑의 영혼이라도 한철 붙잡아두기에 넉넉할 만큼, 이곳의 산과 물이 품고 있는 자태가 빼어났다고, 아니 지금도 빼어나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여행수첩]

●너릿재 옛길은 광주 쪽보다 화순 쪽에서 들머리를 찾기가 쉽다.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에서 나와 제2순환도로를 타고 화순방면으로 간다. 지원교차로에서 화순읍 방향으로 꺾어 22번 국도 타고 너릿재터널을 지나자마자 이십곡리 방향 우측 샛길로 빠진다. 거기부터가 너릿재 옛길이다. 화순군 문화관광과 (061)374-3501 ●누루목 적벽은 화순군 이서면에 있다. 화순 군내버스(217번)가 다닌다. 출입 허가를 받으려면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용연사업소로 연락하면 된다. (062)609-6122 이서면 번영회 (061)379-5090

화순=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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