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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플러스한국효특집 한승동 (대구 세중한의원 원장)

입력
2013.11.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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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아버지 아버지가 손 붙잡아준 4대 한의사의 길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6년이다. 이맘때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교 시절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나는 의대를 가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내가 법학을 전공하셨으면 했다. 막상 당신은 30년 동안 독학으로 한의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나는 법관이나 고위공직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 과거를 준비하다가 한의학으로

공직과 한의학은 우리집안의 가업(家業)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지셨다. 농학(農學)을 전공하시다가 대구대학교 약대 1기로 입학을 하셨는데 졸업 후에는 공무원으로 일하셨다. 약국은 어머니가 운영하셨고, 아버지는 퇴근 후에 일을 도우셨다. 그러면서 틈틈이 한의학계의 거성(巨星)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셨다.

아버지의 공부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흠모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셨다. 주역과 관상이 능하셨던 할아버지는 자식(7남매)들 중에서 아버지가 제일 크게 될 상이라고 하셨다. 생각건대 할아버지의 예언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원래 한학을 공부하셨다. 젊은 시절 과거를 준비하셨다. 그러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과거제가 폐지되었다. 할아버지는 한의학에 눈을 돌리셨다. 당시 한의사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약종상’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셨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침을 비롯해 약 제조가 가능했다. 할아버지에게는 호구지책이었다. 당시 일제는 한국적인 것들은 모두 탄압했기 때문에 한의학 역시 빛을 보기는 힘들었다.

아버지,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창립 멤버

평생 할아버지를 마음으로 흠모하셨던 아버지는 한의학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한의학이 세상으로 나온 계기는 대구한의대 설립이었다(1980ㆍ당시는 단과대학). 대학을 설립하려면 박사 출신 세 명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변정환 총장과 함께 3인에 이름을 올렸다.

나는 그 즈음 군대를 제대했다. 재수하던 즈음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군에서 체력이나 단련하고 올 생각으로 자원입대를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의대를 권하셨다. 당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평생 연구한 한의학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셨으리라.

나는 아버지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실 고등학교 때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던 나는 사사건건 반항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설득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긴 시간 대화도 했다.

드라이브 하면서 아버지와 깊은 대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둘이 떠난 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밀폐된 공간에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 옛날 어른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에게 운전대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렇게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실컷 대화를 나누고 나면 아버지나 나나 마음이 풀어지고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해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할아버지께서 시작하신 한의학을 3대에 걸쳐 전수받았다. 내 아들까지 한의사가 되었으니 장장 4대에 걸쳐 한의학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아들은 고3때 문과를 지망했다. 나는 억지로 한의학을 권하지 않았다. 그러다 재수를 하면서 한의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들은 대학을 다니면서 “사서삼경을 배우는 것이 너무 재밌다”는 말을 자주했다. 왜 안 그럴까. ‘타고난’ 한의사인데. 가을 바람이 불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디스토마로 돌아가셨는데 민물회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가을에서 초겨울 즈음이면 시원한 무에 민물고기를 무쳐서 먹으면 단맛이 난다고 했다. 지금은 민물회를 파는 곳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 그런 곳이 있으면 아마도 민물회를 먹으며 그분들을 추억했을 것 같다. *

◈ 아버지 한영구(1928~2007) - 경북대 농화학과ㆍ대구대 약대 졸업. 공업연구소 초대 소장. 보건연구소(現 보건환경연구소) 소장. 대구한의대 교수 및 학장 역임.

◈ 아들 한승동(58) - 대구한의대학교 4회 졸업(84학번). 현 대구 세중한의원 원장.

아버지가 손 붙잡아준 4대 한의사의 길

정리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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