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국정 교과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재국가로의 회귀"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정 총리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교과서 국정 체제에 대한 견해를 묻자 "다양한 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통일된 국사 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며 "국정교과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정 총리는 "(국정체제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공론화해서 함께 논의해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으나, 국정 교과서 체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앞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 역시 지난 달 1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교과서 검정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문제가 드러나 국정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며 "공론화를 거쳐 정책 판단을 해야 한다"고 답해 정부 차원에서 국정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과서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검정제도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있을 수 있는 게 역사과목의 특성인데 이런 이유로 국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건 모순적인 주장"이라며 "교사나 학생들에게 적절한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봉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독재국가로 회귀'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국정 교과서 체제인 나라는 북한 등 국민들의 인식을 통일하려는 일부 공산주의 국가뿐"이라며 "국정체제를 채택했던 유신독재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또 "검정심의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어떻게 고칠지, 역사교육에서 꼭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토론을 해서 대안을 마련해야지, 논란이 있으니 국가가 다 하겠다는 건 독재국가식 논리"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중 한 교수도 "국정교과서가 되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과서도 정부의 입맛에 맞게 바뀔 가능성이 있고 그 피해는 교사와 학생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당도 대응 조짐을 보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빌미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야당 교문위원들과 공동 대응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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