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단청이 벗겨지면서 다시 숭례문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며 탈색되고 박락이 생기는 것은 목조건축 단청의 자연스런 일이라지만 복원 5개월 여 만에 시작되는 균열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박락현상은 서까래에서 많이 발견된다. 주로 주화(감꼭지무늬)의 육색이라고 말하는 연한 주황색 부분과 매화점과 같이 흰색으로 처리된 면에 집중되어 있다.
30명 단청장을 이끌었던 홍창원 단청장은 교착제인 아교의 문제, 백색 물감인 호분(조개가루)의 두께 문제로 물감 층의 박락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일본산 안료사용이 문제가 되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욱이 그의 가슴 아픈 지적은 국보 1호가 일본 안료의 교보재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모두 맞다. 단청을 할 때는 뇌록색과 같은 단색으로 가칠을 한 후, 밝은 색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어두운 밑 색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흰색을 칠한 후 원하는 색을 올리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 때 호분으로 칠해진 흰색 면보다 위에 올리는 밝은 색 물감의 아교 농도가 진하고 물감 층이 두꺼우면 아래층 물감을 뜯어내며 균열이 생긴다.
채색화를 할 때도 호분은 좋은 호분일수록 아교와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많이 치대어 사용해야 하며, 또한 시간이 경과할수록 아교성분을 밀어내어 박리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사용이 까다롭다. 호분은 아교 교합도 어렵고, 어느 정도 농도를 사용하여야 마른 후에 적절할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두껍게 올리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지나치면 박리현상이 일어난다.
아교도 마찬가지이다. 아교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보관 상태 등에 따라 변화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아교는 접착이 될 정도의 소량을 사용하여야 발색이 좋지만, 자칫 적게 쓰면 물감이 묻어나거나 떨어지고 또한 많이 쓰면 번쩍거리거나 박리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교와 호분의 사용은 많은 실험과 숙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숭례문 단청에 나타난 물감의 박리현상은 이처럼 재료를 다루는 기법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그간 화학안료로 하는 단청에 익숙해져 있다가 숭례문 복원은 천연 안료로 진행을 했다는 것이다. 물감의 품질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이렇게 새로운 안료와 접착제를 도입하면서 이에 대한 충분한 재료적 기법적 실험과 연구 분석이 있었는지가 문제이다.
기술력도 충분히 배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임해야 했던 급박했던 일정상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아교는 수용성이라 날이 추우면 금방 굳어 버려 물감과 혼합되지 않고 작업하기가 어려운데, 지난해 초겨울까지 단청작업이 이뤄졌다면, 추운 날씨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무의 건조 상태, 목재의 바탕 면에 처음 칠하게 되는 아교포수 등 박락의 변수는 많다. 어떠한 공정으로 작업했는지 제작일지를 열어놓고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황평우 소장이 얘기한 "일본 안료의 교보재"이야기는 한국화 채색을 전공한 필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가능한 석간주와 호분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에서 수입하여 색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통 채색물감 개발은 사실상 그 맥이 끊어진 지 오래이다.
채색화를 하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수입된 재료를 쓰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고려 불화, 조선 풍속화와 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색의 역사는 찬란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재료가 아닌 일본에서 만드는 재료를 갖고 우리의 정신과 기법으로 채색화의 맥을 이어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일본의 물감이 아니라, 우리의 색 재료로 숭례문이 복원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숭례문 단청 보수문제를 앞에 두고 그간 우리의 색에 대해 얼마나 소원했고 무지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장 눈앞의 성과를 내기 위해 두 번 세 번 우리의 국보 1호에 생채기를 내지 않길 바란다. 오늘 숭례문의 그늘을 보면서, 우리의 혼을 담는 우리의 채색과 재료기법에 대한 관심과 연구 개발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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