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1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1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입력
2013.11.04 12:08
0 0

산사의 겨울은 이르게 찾아왔다.

청아한 독경 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고즈넉이 울려 퍼졌고 천년 고찰 해인사 처마를 비추던 별 하나가 먼동 터오는 시공을 붙잡고 있었다.

"원택아, 나 좀 일으키거라"

요를 깔고 누워있던 큰스님이 20여 년을 곁에 둔 상좌 원택(圓澤)스님에 의지해 육신을 바로 세웠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어 푸른 산에 걸렸도다/

형형한 눈빛으로 평생의 열반송을 건넨 노 스님은 "참선 잘하라"는 당부와 함께 가부좌를 틀고 상좌스님의 어깨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았다.

1993년 11월 4일 이른 아침, '가야산 호랑이'라 불리며 한국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해인사 방장 성철(性徹)스님이 속세와의 연을 끊고 입적하는 순간이었다.

출가하기 전에 얻은 유일한 딸 불필(不必) 스님과 해인사 주지 법전(法傳) 스님 등이 임종을 지켰으며 마지막 거처이던 퇴설당에는 스님이 30년 이상 입었던 누더기 가사와 빛 바랜 고무신이 손때 묻은 지팡이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불교계의 큰 별이 스러지자 전국 각지에서 수 많은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7일장으로 치러진 스님의 다비식에는 수 백 명의 취재진과 20만의 인파가 뒤섞여 장관을 이뤘고 다비가 끝난 후에는 100과가 훨씬 넘는 사리가 수습돼 도력을 가늠케 했다.

1912년 경남 산청의 명문가에서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태어난 성철 스님은 진주중학교 졸업 후 일제하에서 사상적으로 방황하다 35년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동산(東山)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등을 바닥에 대지 않는 장좌불와(長座不臥) 수행 8년과 토굴 속에서의 10년 수행으로 법력을 쌓은 스님은 81년 정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하면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해인사 백련암에 머물며 추대식장에 보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선문답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부대중에게 끝없는 물음을 던졌다.

스님이 떠난 지 벌써 20년, 지금은 3,000배를 마쳐도 친견할 수 없지만 스님이 남긴 법문과 삶의 자세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성찰로 남아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