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임원 가운데 꽁지머리 사나이가 있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경력도 특이하다. 지난 해 6월 그가 SK텔레콤 전무로 영입됐을 때, 업계에선 하나의 사건으로 여겼다. 위의석 상품기획단장(49).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가 SK텔레콤 합류 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위 단장은 원래 유명한 해커였다. 인터넷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기도 전인 1980년대 말, 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는 이 학교와 국내 대기업 전산망을 헤집어 놓아 이름을 떨쳤다. 그냥 호기심에 시도한 해킹이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끝내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카이스트는 오히려 전산보안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했다.
대학원 졸업 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거친 위 단장은 1993년 친구들과 함께 새롬기술을 창업했다. 2000년 닷컴버블 때 황제주로 등극했던 회사다. 하지만 친구인 오상수 사장 등과 사업방향에 대한 의견이 달라, 그는 LG그룹(당시 금성소프트웨어)으로 이직했다.
얼마 후 그는 카이스트 선배였던 허진호 박사로부터 인터넷기업 창업 제의를 받았고, 1994년 국내 1호 인터넷서비스업체인 아이네트를 설립했다. 인터넷을 모르던 시절 아이네트는 국제전용선을 끌어와 국내 최초의 상용 인터넷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메일 계정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 게임도 인터넷으로 하고 자동차 TV 시계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죽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일본 호주 등에서도 기술을 배워 갈 정도로 아이네트의 인터넷 서비스는 탁월했다. 하지만 미국 PSI넷으로 인수된 후 모기업이 파산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창업과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2006년 NHN(현 네이버)에 합류했다. 네이버 검색엔진을 개발한 NHN 창업멤버이자 카이스트 대학원 선배인 이준호 박사의 제의였다. NHN에서 그가 만든 작품이 바로 검색광고 시스템. 당시 외국산 일색이던 국내 검색광고 시장에서 그는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했다. 업계에선 NHN이 적어도 수익구조 측면에서 지금 같은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힘은 바로 이 검색광고시스템에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그는 또 한번 도전의 길을 택했다. 행선지는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이었다. 새로운 성장동력발굴에 골몰하던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SK텔레콤에 없는 유형의 사람을 찾아오라"는 특명을 인사팀에 내렸고, 그 결과 스카우트됐다. 그에겐 23번째 직장이었다.
하 사장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한가지였다. "회사에 적응하지 마라." 위 단장은 "CEO는 다른 생각, 다른 시각, 다른 방법을 원했다"며 "깜짝 놀랄만한 완전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위 단장의 비밀병기는 내년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SK텔레콤 합류 후 ▦여럿이 휴대폰으로 동시에 다자간 통화를 할 수 있는 'T그룹온' ▦간편 착신전환 등 12가지 서비스를 묶은 'T통화도우미'등 여러 작품을 내놓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지금 개발하는 서비스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거래하는 (앱스토어 같은) 온라인 장터처럼 통신망을 다양한 콘텐츠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며 "개발이 완료되면 과거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나아가 통신업계의 판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 단장은 아직도 인터넷 무한 시대를 꿈꾸고 있다. 그는 "유선에서 무선으로 환경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지금도 꿈꾸고 있다"며 웃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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