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심봉석의 메디토리/11월 4일] 명주실 진맥과 원격의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심봉석의 메디토리/11월 4일] 명주실 진맥과 원격의료

입력
2013.11.03 18:31
0 0

사극드라마에서 어의가 왕비를 진찰하는 장면에는, 왕비의 손목에 묶어서 방 바깥까지 늘려놓은 실을 이용하는 이른바 '명주실 진맥'이 등장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 한 가닥으로 왕비의 상태 파악이 가능할리도 없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면 이는 명주실이라는 원시적 통신수단을 이용한 원격의료라고 할 수 있다.

원격의료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의사가 다른 장소에 있는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의사들 간에 의료에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료서비스뿐만 아니라, 환자나 노인들의 상태 감시나 일반인에 대한 건강관리인 e-헬스 혹은 U-헬스도 포함된다. 일차적 단계의 원격의료가 전화나 이메일을 통한 의사와 환자의 진료상담이나 인터넷 건강상담이고, 영상전송시스템인 PACS는 근거리 원격의료이다. 로봇수술의 경우도 수술대와 떨어져서 따로 위치한 콘솔박스에서 집도를 하기 때문에 원격의료의 일종인 원격수술이다.

영토가 넓어서 병원을 가기 어려운 지역이 많은 미국에서 원격의료가 처음 시작되었다. 1959년, 미국 네브라스카주의 오마하시 정신병원과 112마일 떨어진 주립정신병원 사이를 마이크로웨이브로 연결하여 상호작용적 시스템을 가동한 것이 현대 원격의료의 효시이다. 1960년대에는 NASA가 우주인의 생체신호를 통신위성을 통해 중앙통제본부에서 감시하는 기술의 개발로 초창기 원격의료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후에는 군병원, 해외 및 격ㆍ오지 거주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에 역점을 두고 개발되어 왔다. 국내에서는 1988년 3차 종합병원과 의료 취약지역의 보건의료원 간에 공중전화망을 이용한 원격의료 영상진단 및 문진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이래 20년 동안 약 70여 개의 원격의료에 관련한 연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원격의료에서 전달되는 전자정보는 단순 문자나 캠 화상을 비롯하여 생체신호,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인데,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정보는 세밀한 부분까지 전달되어야 하므로 해상도가 높아 용량이 방대하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2,048×2,560 픽셀 이상의 고해상도 모니터가 필요하다. 의료정보를 전달하는 통신기술은 자료를 보관하기 위한 저장전송방식과 진료를 위해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동기화 방식이 사용된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이오센서를 이용한 원격진단 단말기가 필요한데, 현재 개인용 의료기기로 측정할 수 있는 생체신호는 키, 몸무게, 체온, 혈압, 혈당, 맥박, 동맥혈산소포화도, 심전도 정도뿐이다. 그런데 이런 수치만으로는 환자의 상태를 세밀하게 판단하기가 어렵고, 장기질환자를 대상으로 화상통신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명주실 진맥'이나 마찬가지로 감에 의해 진단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의사회에서도 원격의료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 지역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없는 환자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혹은 환자의 의학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함으로써 상태를 정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원격감시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오늘날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통신 환경의 개선, 고령화와 건강한 삶에 대한 요구 등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시장규모도 더 성장할 전망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로 원격진료를 추진하는 것은 맞지만, 막대한 시설과 세밀한 전문기기가 요구되는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원격의료는 만성질환의 관리나 벽ㆍ오지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만 쓰일 수밖에 없다.

21세기 의료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인 환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양질의 삶에 대한 추구, 질병예방과 건강관리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개인 건강을 상시 감시하여 질병을 조기 발견하여 치료하고, 고령자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필요하다. 의료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로 신뢰성과 안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원격의료도 단순한 경제적 논리나 편리성을 위한 목적보다는 이러한 변화와 현실적인 환경, 그리고 의료현장의 목소리에 맞추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심봉석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