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는 너무 어려요. 최소한 75세는 돼야 합니다."
취업 조건을 설명하는 벤자민 모저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스위스 취리히 시니어디자인팩토리는 노인들이 직접 디자인한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다. 노인을 보살핌의 대상에서 생산의 주체로 바꿔놓은 이 회사는 모저가 취리히 예술대 졸업반이었던 2008년, 졸업 전시에 낼 작품을 모색하면서 시작됐다. 젊은이들에게서 찾기 힘든 '연륜의 손기술'을 상품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활발한 참여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상설매장을 가진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1일 2013 공공디자인 국제심포지엄 참석 차 한국에 온 그를 만났다.
-시니어디자인팩토리가 하는 일과 생산하는 상품이 궁금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수 뜨개질한 목도리나 카펫, 주방 장갑, 티셔츠, 그림 엽서 등을 판다. 전통 요리법을 담은 요리책도 나온다. 2011년 3월에 첫 매장 겸 공방을 열었고 이곳에서 노인들과 함께 상품을 만들거나 제품 개발 회의를 한다. 할머니들은 뜨개질 솜씨가 뛰어난데, 단순노동만 하는 건 아니다. 디자인부터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 판매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왜 하게 됐나
"노화는 미래에 누구나 겪을 일이다. 스위스 정부는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지만 일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더 늙는다. 우리 회사에 다니는 할머니의 가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일을 하기 전에는 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공방에 나온 지 두세 달 만에 증세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노인의 노동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사회의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노인들과 일하면 어떤 점이 좋고 무엇이 안 좋은가
"그들에게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일 진행 속도도 젊은이들보다 훨씬 느리다. 그러나 그들의 손기술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마 기술면에서는 젊은이들이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매장에서 워크숍을 자주 여는데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뜨개질과 요리를 배운다. 반대로 노인들은 청년들로부터 컴퓨터 사용법을 배운다.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동등한 위치에서 지식을 나누고 우정을 쌓는 것이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한국엔 노인 공경 문화가 있다. 그 때문에 노인을 '모시고' 일하기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스위스엔 그런 문화가 없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노인은 대접받으려 하고 젊은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경우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스위스 정부는 독거노인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젊은이들 개개인은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무시하거나 외면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개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스위스에서 이 프로젝트가 가능한 것 같다. 나는 노인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알고 있는 동료라는 생각으로 존중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나의 젊음을 존중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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