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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하나 캠페인] <1> 지체장애 정선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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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하나 캠페인] <1> 지체장애 정선영씨

입력
2013.11.0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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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에 사는 정선영(45ㆍ가명)씨는 27년 전 여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노래 잘 부르기로 소문난 쾌활한 소녀였다. 젓가락 두드리며 뽑아내는 구성진 노래로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던 꿈 많고 여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씨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길가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이었다. 손발을 움직이지 못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는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을 할 때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고, 일찍부터 찾아온 골다공증 탓에 약을 입에 달고 산다.

지난해 1월 또 다른 불행이 닥쳤다. 정기검진에서 자궁에 용종, 낭종, 내막증, 염증을 동반한 자궁경부암 진단이 내려진 것. 두 차례의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항암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씨는 매달 25만원 가량 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했다. 진도군 군내면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정씨 몫의 수입이라곤 매달 나오는 장애수당 16만6,800원뿐이어서 매일 먹는 약값을 대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고통 속에서도 정씨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노래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진도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내 몸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건강만 허락한다면 장애인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직도 가수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1980년대 인기가수 김범용에 열광했고, 어릴 적 마을의 각종 노래자랑을 휩쓴 그는 "지금도 노래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고 말했다. 2010년부터 전국 장애인노래자랑에 참가해 최우수상 등을 받으며 3년 연속 입상했다. 최신가요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노래를 좋아하지만 첫 손에 꼽는 애창곡은 박구윤의 '뿐이고'다. '힘든 날은 두 어깨를 기대고 가고/ 좋은 날은 마주보고 가고/ 비바람 불면 당신 두 손을 내가 붙잡고 가고 (…) 이 넓은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내 사랑은 당신뿐이다'는 노랫말이 자신의 마음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병마의 괴롭힘은 정씨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뇨병과 신장투석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아버지가 수술비 등으로 빚을 남긴 채 2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남동생도 뇌수술을 네 차례나 받아야 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항상 곁에서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주던 어머니도 척추관절염으로 등과 허리에 쇠를 박는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던 정씨는 한달 전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한 장애인단체에서 중증장애를 겪고 있는 정씨를 빼고 야외 체험 활동을 떠난 것이다. 정씨는 "같은 장애인끼리도 혼자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한 내가 귀찮았던 모양"이라며 씁쓸해 했다. 우울증에 빠져 식사도 거르던 정씨를 딱하게 여긴 친지들의 도움으로 지난달 제주도로 2박3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정씨는 "돌고래 쇼도 보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큰소리로 웃을 수 있어 너무 즐거웠다"며 "장애 때문에 조금은 위험했지만 용기를 내 탔던 잠수함 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의 특기인 노래 외에도 복지관에서 배운 도자기 만들기, 손톱 손질하기 등으로 그동안 자신을 돌봐 준 도우미 선생님들에게 작은 마음의 보답을 하는 게 소원이다.

정씨의 손발이 되어주는 활동 보조인 김말례(49)씨는 "선영씨는 말을 재미있게 잘 해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며 "항상 밝게 사는 그가 빨리 치료를 받아 건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도 "어려워진 가정 형편 탓에 치료를 할 수 없어 딸에게 미안하다"며 "그나마 상심 않고 밝게 지내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몸이 건강해지면 오랜 꿈이었던 가수에 도전해 볼 작정이다. "이제까지 제게 도움을 줬던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장애인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꼭 오리라 믿어요."

진도=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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