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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8> 연출가 손진책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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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8> 연출가 손진책 가족

입력
2013.11.0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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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연극 교류 이끄는 중진굿 형식 원용 '아시아 온천' 일본서 호평'로미오와 줄리엣' 12월 중국 상륙창극 세계화 위해 서양고전 번역·정리 중● "마당극 현대화" 극단 미추 설립3년 전 극단 대표직 부인 김성녀가 이어 받아극작가 정의신과 작업 땐 아들이 조연출● 가족 4명 모두가 연극의 길"무대만이 궁극의 목표" 한목소리아들 지형씨 "연극의 순수성 견지할 것"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딸 지원씨는치유·회복으로서 연극에 눈뜨고 향후 고민 중

때로 자식들은 부모가 축적해 낸 시간을 놀라우리만치 기억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한과 흥의 무대를 주재해오고 있는 손진책(66ㆍ국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63ㆍ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부부의 집안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다.

"인재들이 TV, 영화로 유출되는 현실이지만 무대가 궁극의 목표라는 사실을 (부모로부터) 배웠다."이제 문화 창조의 현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아들 지형(33ㆍ공연기획사 MAT 대표)은 도달해야 할 지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특히 "연극의 순수성을 한국적 상황하에서 견지하고 싶다"는 다짐에는 부모가 겪어낸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공연판의 속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 온 아들의 말은 인사치레로 하는 수사가 아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항상 집보다 연극이 우선이신 부모님은 (명성과 인기를 떠나)연극 작업에 대한 이미지를 내게 일찍이 각인시켰다."그것은 "열심히, 여럿이 함께, 필사적으로 하는 모습"이었고, 자신이 어느새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와 있는 길이다. 딸 지원(36)씨와 함께 네 식구가 모두 연극의 길을 걷고 있는 연출가 손진책씨의 가족에게 익숙한 소통법은 말 없이 통하는 언외별전(言外別傳) 방식이다. 시나브로 익어가는 깊은 술맛처럼.

"아버지는 워낙 과묵한 분이세요. (아버지로부터)많이 배우리라 생각하지만 오해예요." 어쩌다 함께 있으면 오히려 연극 이야기를 안 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삶의 목적을 연극으로 세운 이래 제일 큰 부담으로 자리한다는 말이다. 그 아버지가 모처럼 마음 먹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우선,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한국 중국 일본 모두를 손바닥 보듯 하는 중진으로부터 듣는 시대 읽기였다.

그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문제에 대해 "영토에 대한 두 당사 국가의 집착으로 빚어진 필연적 결과"라며 "끝없는 싸움"이라 전망했다. 중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확신이다. 이념적 편차 없이 한국 고유의 연극적 자산을 "열린 차원"에서 알려온 주인공으로서 발하는 전망이다. 그는 말수가 적다는 저간의 통념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많은 어휘를 구사했다. 물론 연극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지난 5월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아시아 온천'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되 한국적 연희 유산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무대와 객석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일에 생소한 일본 객석에 우리의 마당극적 양식을 원용한 어법을 제시, 공연장 안팎에 무당의 주술적 신명이 넘쳐났다. "동일본 대지진 뒤 일본에 갔더니 혐한(嫌韓) 분위기마저 느껴져 일본 연극인들과 회의하며 총체극을 제안했어요. 일본 배우들은 물론 재일 작가 정의신씨도 힘들어 하더군요."그것은 사실, 도발적 실험이라 해도 좋았다.

사실주의 대본을 굿 형식의 열린 연극으로 하자고 했으니, 뭣보다 일본 배우들이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결국은 그 얌전하던 일본 관객들이 마지막 날 전원 기립박수로 답했다. 현재 중국의 국가가극원에서 상연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인 손씨는 일본 국립극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만든 작품인 만큼 일본 재공연의 날도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이제 그의 무대는 중국 상륙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자신의 극단 미추 식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내달 8일 중국에 상륙해 베이징(10,11일), 상하이(15,16일)에서 잇달아 공연된다. 이 작품의 세계화 무대로는 처음인 만큼 그에겐 각별한 자리다. 향후 일년에 한 작품 꼴로 중국서 올릴 무대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8년 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국가가극원에서 작업했던 인연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냉철히 생각해보면 중국은 한국 연극의 거대한 시장일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다. 앞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기대되는 한ㆍ중ㆍ일 3국의 문화교류에서 그의 경험 자산이 더욱 빛을 발하리라는 기대는 자연스럽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12월 그는 칠레 극작가 아리엘 돌프만의'The Other Side'를 세계 초연하기도 했다. 한 때는 한국 연극의 국제 창구이기도 했던 그가 중국과 일본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매우 경험적이다.

그것은 우리 연극적 자산의 전통을 계승 발전한다는 기치로 지난 1986년 그가 만든 극단 미추의 역사를 관류하는 믿음이다. 전통 마당극의 현潤?작업을 기치로 내건 미추는 우리 연극의 원형을 악가무(樂歌舞)의 복합체로서 마당극과 남사당의 유산에서 찾았다. 현대적 복원ㆍ발전이라는 목표는 동시대를 호흡해야 할 예술로서 연극의 운명이었다.

거기에는 손씨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한 3년 세월도 포함돼 있다. 겸직 불가 원칙에 따라 부인 김성녀씨가 3년째 미추 대표로 있다. 그 간 '벽 속의 요정''김성녀의 마당놀이''쥐의 눈물''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등 4편의 공연이 올려졌는데, 앙콜과 지방 공연까지 합쳐 300여 회라는 누계를 세우게 됐다. 대표가 교체된 2010년은 극단 미추 하면 으레 따라오던 마당극을 접은 해이기도 하다. "마당극은 30년만 하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이다. 한국적 재담과 웃음이 만발하던 마당놀이는 고별 공연도 가졌다. 배삼식 작가가'심청전''수궁가''춘향전''배비장전' 등 히트작 8편의 고갱이를 엮은 무대는 DVD로도 제작돼 있다.

우리 말 맛을 아는 젊은 극작가 배삼식,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 씨 등 두 사람은 미추의 작업에서 토대를 제공하는 주역이다. 특히 김성녀 씨가 극단을 이끌 때 나온 신작은 모두 정 씨의 것이다. 일본 연극과 한국 연극을 모두 아는 경계인으로서 정씨의 작품은 작가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은 연극적 진실을 다 드러내며 극단 미추에, 나아가 관객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한편 정씨가 작업할 때는 아들 지형씨가 조연출 도맡아 미추에 새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푸른 배 이야기'등은 보기 드문 두 사람 사이의 전적인 신뢰 관계에서 도출된 작품이었다.

미추의 연극 미학은 마당 개념의 동시대적 확장이다. 손씨는 길이 남기고 싶은 대표작 3편만 꼽으라는 부탁에 창단작 '지킴이', 상복이 많았던 '오장군의 발톱', '남사당의 하늘'을 꼽은 후 '열하일기 만보'는 꼭 추가하고 싶어 했다.

딸 지원(36ㆍ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씨는 지금 논문을 준비 중이다. 무대 예술 작업을

하지만, 다르다. 그녀는 서양적 뮤지컬, 그것도 본고장 런던에서 잔뼈가 굵었다.'그리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거쳐 2004~2006년은'미스 사이공'의 월드투어 공연에서 스윙(swingㆍ대리 배역)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2007년, 정착을 염두에 두고 귀국했다. 특히 몽골 울란바토르의 KOICA(한국국제협력단) 멍겐 종합학교에서 2년 동안의 음악교육 분야 봉사활동 경험은 신지평을 열어 주었다. 개교 이후 최초로 사물놀이 팀을 만들어주고 한국 전통무용과 재즈댄스 등을 현지인들에게 가르치며 다원 예술, 통합적 치료의 기제로서 예술에 눈 뜨고, 향후를 고민 중이다. "애초 오락ㆍ즐거움으로서의 예술로 출발했으나 치유로서의 예술에 주목하게 됐죠. 지금은 백수예요."앞으로 한국과 국외 중 어디에 정착할지 모르겠다는 딸의 말을 두고 어머니는 "배우를 꿈꾸다 치유와 회복으로서의 연극에 눈 뜨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중"이라 부연한다.

손진책 씨의 현직은 오는 8일이 임기다. 그가 미추로 복귀하면 자연히 극단 대표가 다시 경질되는 셈이다. 그것도 권력이양이라면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평화적이고도 발전적 체제변동이 될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손진책 표 연극이란?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재창조다. 특히 무대예술 장르로서의 창극은 분명 세계화의 가능성이 있다." 팩트(fact)의 힘이 느껴지는 견실한 답이다. 1년에 한 번은 마당놀이 무대를 펼쳐온 시간이 축적돼 있지 않은가. 세련화ㆍ양식화된 마당놀이, 즉 창극의 미래를 위해 그는 셰익스피어 등 고전을 연극적으로 번역 정리 중이다. 젊고 유능한 소리꾼들도 눈 여겨 봐오고 있다. 자식들에 대해 짐짓 딴청을 피우고 있던 그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각자 주관을 갖고 있으니 나는 믿는다. 옳지 않은 것은 못 보는 성격들이라, 타협을 모른다."한국적 무대,'마당'에 대한 고집은 창조적으로 승계될 것 같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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