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던 러시아 학생이 국내 대학 병원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게 됐다.
은행가를 꿈꾸던 예브게니 트레티아코브(16ㆍ사할린 제3학교)군은 평소 수영 가라테 등 격렬한 운동을 즐길 만큼 건강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을 느껴 사할린 현지 병원를 찾았는데, 신부전(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배출하는 신장 기능 장애) 진단이 내려졌다. 당장 신장 이식 수술이 급했지만 러시아 내에서도 의료 기술이 상대적으로 낙후한 사할린에서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는 신장 이식 수술을 하는 병원이 있긴 했으나 대기자가 많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부모의 노력은 헌신적이었다. 사할린 항공에서 일하는 아버지 드미트리(39)씨는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그러던 중 한국의 의료 기술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회사 한국 지사에 있는 한국인 직원에게 병원 물색을 부탁했다.
이 직원의 도움으로 예브게니군은 지난해 12월 7일 처음 한국에 입국해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를 찾았다. 의료진의 진단은 신부전의 일종인 반월상 사구체신염(면역 체계가 신체를 공격하는 증상)으로 수술이 시급했다. 그러나 예브게니군은 감기에 걸리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당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극도로 예민해진 드미트리씨는 의료진에게 "왜 수술이 안 되느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의료진은 지난달 19일 드미트리씨의 왼쪽 신장을 적출해 예브게니군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와 대화하면서 병원 국제진료센터의 러시아어 통역 인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급할 때는 바디 랭귀지와 구글 번역기를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예브게니군은 "신장을 기증해준 아버지에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라며 "의사 선생님들이 '흉터도 작게 남을 것'이라고 했다"고 활짝 웃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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