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 비밀경찰(게슈타포)의 수장으로 종전 후 행방이 묘연했던 하인리히 뮐러(1900~1945)가 연합군의 베를린 함락 직후 사망해 베를린의 유대인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계획 설계자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뮐러는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인 1945년 5월1일 나치 수뇌부의 최후 피신처였던 베를린 벙커에서 목격된 이후 자취를 감춰 그의 행적을 둘러싸고 설이 분분하다.
독일 일간 빌트에 따르면 역사학자인 요하네스 투흐엘 독일레지스탕스추모관 관장은 새로 발굴한 뮐러의 사망신고서를 근거로 뮐러가 1945년 벙커에서 가까운 나치 공군본부 인근에서 사망했으며 그 해 8월 시신이 발견돼 공군본부 정원에 임시 매장됐다가 유대인 공동묘지에 이장됐다고 밝혔다. 베를린의 유대인 거주지였던 그로세함부르거가(街)에 17세기에 조성된 이 공동묘지는 1943년 나치에 의해 파괴됐다가 종전 직후 연합군 공습으로 숨진 2,700여명의 집단매장지로 쓰였으며 현재는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뮐러의 행적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나치 전범을 추적하는 유대인 단체 시몬비젠탈센터 등의 집요한 추적에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이 1945년 5월 사망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뮐러가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 쿠바, 아르헨티나 등지로 피신했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투흐엘은 "뮐러가 전쟁 막바지에 사망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며 1945년 12월 작성된 이번 사망신고서가 뮐러의 행적에 관한 논란을 마감할 결정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대인 단체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에프라임 주로프 시몬비젠탈센터 예루살렘 사무소 소장은 "나치 전범들은 추적을 피할 목적으로 허위 사망신고서를 만드는 수법을 자주 써왔다"며 이번 주장 또한 DNA 검사를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로프는 "뮐러가 유대인 묘지에 묻히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신속히 이장해 신나치주의자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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