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中伏)이던 지난 7월 23일 밤 11시. 술 취한 노인 두 명이 경기 고양시의 대형 유기견 보호시설인 '생명공감보호소'에 침입했다. 의도는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험악한 얼굴에 터질듯한 근육질의 맹견(猛犬) 케인 코르소 '쿠로'였다. 평소보다 요란한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는 신창식 보호소 매니저는 "철장 속 쿠로를 보고 겁에 질려 서있더라" 며 "그 상황이 한편 우스웠지만, 보호소 유기견도 이런 취급을 받는데 바깥은 어떨까 싶어 씁쓸했다"고 했다.
보호소가 문을 연 건 지난 7월 5일. 강경미 대표 등 젊은 동물보호활동가 5명과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사비를 털었다. 450평 규모의 문 닫은 군견 셰퍼드 훈련소를 임대해 견사 5개 동과 작은 운동장을 마련했다. 거기 대형견 55마리가 산다. 간판도 없고, 시설도 낡아 누추했지만 이들의 포부는 거대하고 아름답다. 단 한 마리의 유기견도 안락사 시키지 않고 보살펴 입양처를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3동 문을 열자 시베리안 허스키 '카라'가 창살에 몸을 쿵쿵 부딪치며 다가섰다. 당뇨로 시력을 잃어 창살을 못 본다고, 사람을 너무 좋아해 몸에 상처를 입어가면서 다가와 만져달라고 한다고 했다.
강경미 씨는 "어릴 때 예뻐서 입양했다가 덩치가 커지고 병이 나면 유기하는 이들이 많다"며 "생명공감보호소는 한국의 후진적 애견문화를 드러내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농림수산검역본부가 발표한 '유기동물발생현황'에 따르면 2011년 9만6,268마리의 유기동물 중 25%인 2만5,659마리가 안락사 됐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나 자치구에서 승인한 보호소는 유기견을 10일까지 보호하고, 주인이나 입양자가 안 나타나면 안락사 시킬 수 있다. 생명공감보호소는 그런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대형견을 입양해 데려오는 동물구호단체 부설보호소다. 강씨는 "동물보호 활동을 하며 경제적 이유로 안락사 되거나 식용으로 끌려가는 개들을 속절없이 지켜봤다. 대형견이 특히 심하다"고 말했다.
개장 후 그가 입양시킨 유기견은 100 마리가 넘는다. 국제유기견입양사이트 등을 통해 해외로도 5마리가 입양됐고, 현재도 2마리가 대기 중이다. 강씨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유기견 입양을 '구조'라고 생각한다. 개를 먹는 나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점심 시간. 후원자들이 보낸 사료포대를 열 기미를 보이자 견사는 '난리'가 났는데, 진돗개 한 마리는 철장 구석에 혼자 웅크리고 있다. 생후 7개월로 추정되는 '황구'다. 황구는 살이 드러날 정도로 줄에 묶여 피를 흘리는 상태로 구조됐다. 움직이는 것도 힘겨워했다. 수술 받고 상처는 나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직 덜 아문 상태. 사람을 무서워하고 누가 곁에 있으면 밥도 안 먹었다고 했다. 한 회원이 임시보호를 자처, 황구를 집에 데려가 한달 남짓 애정을 쏟은 뒤에야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강씨는 "상처가 아무리 깊어도 지속적인 관심을 쏟으면 언젠가 마음의 문을 연다"며 "시간과 애정만 있으면 모두 입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 설문동의 권기표(46) 류혜영(45)씨 부부는 한동안 생명공감보호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유기견 '도로시'를 '스토킹'하다 지난 10월 입양했다. 잃어버린 개와 눈빛이 너무 닮아 거의 매일 카페에 들어가 도로시의 소식을 살피던 중 언젠가부터 소식이 끊겨 입양이 된 것으로 생각해 안타까워하던 차에 지난 달 9일 한글날 동네 행사에 마실 갔다가 후원행사 나온 도로시를 만난 것. 부부는 "사진으로 보던 도로시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보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잉글리시 셰터 종인 도로시는 강원도 한 야산에서 나무에 묶인 채 구조됐는데 젖이 불어있던 걸로 보아 전 주인이 새끼를 받고 버린 것으로 추정됐다. 얼마 전 집을 지나가는 우체부 오토바이를 보고 처음으로 '컹' 하고 짖는 것을 보고 부부는 감격했다고 말했다. "자기 집으로 받아들인 신호거든요." 부부는 "세파를 겪고 집으로 돌아온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처럼 이름을 '도로시'로 지었다. 애정의 책임과 소중함을 도로시를 통해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적지 않은 민간 동물보호소가 있지만 재정이 불투명한 곳도 있고, 후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동물을 일부러 열악하게 방치하는 '앵벌이 보호소'도, 드물지만 있다. 생명공감보호소는 자원봉사자의 참여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입출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모범적인 보호소 중 한 곳. 월 운영비는 임대료 200만원과 사료비 120만원, 인건비 70만원을 포함해 최소 450만원이 든다. 구조 직후에는 치료비가 많이 들고, 입양 보내려면 미용 비용도 들지만 후원자는 아직 30여명에 불과하다. 운영진의 마이너스 통장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당장 입양하기 머뭇거려지면 마음에 드는 녀석을 데려가 한두 달 정도 함께 살아보는 것(임시보호 자원봉사)도 좋다. 그렇게만 해줘도 유기견 한 마리를 더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잘 따르는 예쁘고 건강한 그레이트 피레니즈 하늘이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홍보를 부탁했다.
독일의 유기동물보호소 치아하임(동물의집)에는 안락사가 없다. 입양희망자가 나타날 때까지 보호하고, 입양률도 약 98%에 이른다. 독일에서는 허가 받은 브리더만 자견을 분양할 수 있고, 자견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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