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낀 집주인 네 명 중 한 명 꼴로 최근 전세금을 올려 받아 빚을 갚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올려주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하우스 푸어'의 빚이 '렌트 푸어'에게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
1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집주인 가운데 대출금을 2,000만원 이상 조기 상환한 집주인 비중이 지난 2009년 말 4.3%에서 올해 6월 말 26.8%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주택의 경우 전세 입주를 꺼리거나 전셋값이 낮기 때문에 대출 상환을 조건으로 전세금을 올리는 전세 계약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세 재계약 시 집주인이 인상된 전세금으로 본인 주택담보대출 중 일부를 상환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임대인의 채무부담 일부가 임차인에게 이전되는 효과가 파생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세자금대출액은 2009년 말 33조5,000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 6월 말 60조원을 넘으며 2배로 증가했다. 그 동안 정부가 내놓은 전세난 대책은 전세자금 대출 확대여서 집주인의 빚을 세입자에게 넘기는 것을 부추겼다.
한은이 전세를 낀 평균 주택의 임대인과 임차인 자금 구성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현상이 확연히 나타났다. 전세 낀 주택의 평균 가격은 올해 6월 말 기준 3억원으로 2년 전에 비해 4,000만원 떨어졌다. 이 집주인은 2년 전 집을 구입할 때 자기 돈은 7,000만원뿐이었며 나머지는 전세금과 대출금이었다. 2년 후 집주인은 전세금을 9,000만원에서 1억4,000만원으로 올리면서 전세금 중 7,000만원을 대출금 일부를 갚는 데 썼고, 세입자는 전세금을 올려주기 위해 5,000만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전세를 낀 평균 주택의 경우 집주인의 부채 5,000만원이 세입자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최악의 경우 빚을 내 집주인의 빚을 갚아준 세입자가 올려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한은은 실질 담보인정비율(LTV) 70%, 총부채상환비율(DTI) 50%를 넘는 '깡통전세'가 전세 낀 주택의 9.7%라고 밝혔다. 약 36만가구가 깡통전세로 추정된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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