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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1월 2일] 노옹(老翁)들의 귀환

입력
2013.11.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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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의 맏형' 서청원 전 대표가 돌아왔다. 71세의 나이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현역 의원 중 최고령이다. 김무성 의원은 상도동계 후배고 이재오 의원은 대학 후배다. 야당 중진들도 과거의 인연으로 그에게 함부로 못한다. 서 의원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은 무한대에 가깝다.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청와대가 당에 그의 공천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진작부터 돌았다. 그는 앞으로 새누리당을 확실한 박 대통령의 친위조직으로 만드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75세다. 내각 수반인 정홍원 국무총리보다 다섯 살이 많고 사법시험 12년 선배다. 국무회의 장소에 들어설 때 정 총리는 김 실장보다 한 발짝 뒤에 걷는다.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들이 한껏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또 있다. 최근 민간통일기구인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 대표 상임의장에 임명된 홍사덕 전 의원도 71세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를 받았지만 대표적인 친박 인사여서 박 대통령의 선택을 받았다. 전임 의장인 김덕룡 전 의원은 임기가 1년 남았지만 분위기를 감 잡고 알아서 물러났다. 항간에는 이들을 가리켜 박근혜의 삼각편대라고도 하고 호위무사라고도 부른다.

어디 이들뿐이랴. 유영익(77) 국사편찬위원장, 이경재(72) 방송통신위원장, 심대평(72) 지방자치발전위원장, 한광옥(71) 국민대통합위원장, 남재준(69) 국가정보원장, 주철기(67) 외교안보수석, 김장수(65) 국가안보실장 등 핵심요직을 차지하는 상당수가 60대 중반을 훌쩍 넘는다.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해 80세를 바라보는 인사'라는 의미의 '신386'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만도 하다.

고령화 시대에 나이를 문제삼자는 게 아니다. 그 연배에 사회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지력이 떨어지고 보수화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판단력과 기동성이 떨어지는 70대 노인들이 난마처럼 얽힌 국정현안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국가가 나아갈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내놓는 창발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륜과 경험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국가를 힘차게 끌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정 주축세력이 노인들이다 보니 사회가 급속히 과거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건강하고 발전적인 '개혁 보수'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수구 보수'로 치닫고 있다. 이 정권 들어 권력기관의 핵심이 된 국가정보원은 국정의 전면에 나서며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정권과 불편한 관계였던 검찰총장은 뒷조사에 발목이 잡혀 하차했고, 있는 대로 수사하겠다는 특별수사팀장은 밀려났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가 검정에서 통과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재평가하는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부른 의원이 있는가 하면, 한 보수 인사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외쳤다. 40년 전의 새마을운동이 국가를 부흥시킬 시민의식 개혁운동, 공동체운동으로 둔갑했다. KBS 뉴스는 '땡박뉴스'로 전락하고 종편에선 '5ㆍ18은 북한이 개입해 일어난 폭동'이라는 망발을 서슴없이 보도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언제까지 정국이 과거의 늪에 빠져있어야 하냐고 볼멘소리다. 올드보이들을 요직에 앉혀놓고, 유신과 독재를 그리워하며, 흘러간 과거를 자양분 삼는 이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이상득 최시중 두 노인이 국정을 농단했을 때도 임태희 박재완 곽승준 박형준 같은 젊고 실용적인 세력이 그나마 정권을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은 그런 인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수적이고 완고하고 불통에 사로잡힌 노옹(老翁)들로만 둘러싸인 박근혜 정권의 앞날이 적이 걱정스럽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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