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불법파견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시정명령마저 거부하고 있어 비판이 거세다.
1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 원자력연구원비정규직지회,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은 지난 달 28일 하청노동자 15명을 해고한 데 이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라"는 대전고용청의 권고도 거부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내걸었던 현 정부의 공약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해고 후 5일째 연구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핵연료 및 반도체 생산, 성능관리 등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겼다. 지난해 11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연구원으로부터 실제 업무 지시를 받는다며 대전고용청에 불법파견 진정서를 냈고, 대전고용청은 지난 7월 불법파견을 인정, 하청노동자 73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6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도 1월에 해고된 하청노동자 2명에 대해 불법파견이 맞다고 판정했다. 연구원은 대전고용청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과태료 5억3,000만원까지 부과 받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연구원은 2007년 개정 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파견법)' 적용 대상 23명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개정 후 파견법 적용 대상 50명은 계약직 고용 후 2년 뒤 평가를 거쳐 선별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파견법이 무기계약직 기간제 등 고용형태를 명시하지 않은 공백을 악용한 것이다. 비정규직지회는 노조원을 배제하려는 '꼼수'로 보고 이를 거부하자 연구원은 급기야 지난달 28일 조합원 15명을 해고했다. 대전고용청은 지난 달 29일 "근속 2년 이상 고용의무 적용자는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라"는 구체적인 권고문을 보냈지만 연구원은 "연구원 경영 사정 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상진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평가를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무기계약직 역시 정규직과는 처우가 다른 별도 직군인데다 근속도 인정해 주지 않아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 집행위원은 "정부기관의 시정명령을 같은 정부기관이 따르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민간기업이 정부의 명령을 따르겠느냐"며 "최소한의 법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불법파견 문제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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