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겼습니다. 시민들께 감사 드립니다."
1일 한일 양국 법원에서 힘겨운 소송을 벌여 온 지 14년 만에 국내 법원에서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받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재판정을 나오자마자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광복 후 68년 간 켜켜이 쌓인 응어리를 떨쳐내듯 만세삼창도 불렀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싸움에 나선 것은 1999년. 그 해 삼일절에 일본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냈지만 2005~2008년 1~3심 모두 패소했다.
그 후 실의를 빠져 있던 이들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2009년 3월 결성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외롭게 싸워 온 할머니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99년부터 활동한 일본의 시민모임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도 꾸준히 소식지를 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 앞서 할머니들을 위로하면서 시민들의 힘을 언급했다. 광주지법 민사12부 이종광 부장판사는 "정부가 외면하는 동안 원고들이 15년 가까이 소송을 하고 이 자리까지 온 데는 시민단체와 일본의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이제라도 강제징용 피해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양국 시민과 정부 사이의 응어리진 감정의 문제도 해결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와 유족, 양국 시민모임, 대한변호사협회의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쁨을 나눴다. 원고 중 한명인 양금덕(82) 할머니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겼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며 "모든 시민의 승리"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례에 비춰볼 때 미쓰비시가 이번 판결에도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민모임은 기자회견에서 "정의의 회복이 더딘 데는 한국 정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 피해자들의 상처 중 하나는 '우리를 보호해 줄 정부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고 따졌다. 이어 "삼권분립 법치국가에서 사법부 결정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것인지, 말 못할 불편이 있는지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소송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는 승소하기까지 과정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법정에서 자신들의 도움을 특별히 언급한 '따뜻한 판결문'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한변협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며 "미쓰비시는 판결에 승복하고 자발적인 배상에 나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피해자와 시민모임 등은 기자회견 후 일본 소송에서 참여했다가 2009년 숨진 고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가 있는 국립5ㆍ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전남대 용봉문화관에서 시민보고회를 가졌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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