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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끝나겠지…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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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끝나겠지…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나락'

입력
2013.11.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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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세계를 폭력 형식으로 경험한 인간이 폭력의 바깥에서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 생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9년차 소설가 황정은(37)의 두 번째 장편소설 는 이 질문을 묻기 위해 씌어졌다. "폭력의 바깥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러니까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무방비상태로 존재에게 들이닥치는 폭력적 세계가 있고, 그 난폭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은 폭력이 아니고자 나름의 노력을 쏟아 붓지만, 결국은 '폭력-바깥되기'에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다.

소설은 그가 2011년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던 중 본 여장 부랑자의 뒷모습에서 배태되었다. 짧은 스커트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남성 노숙인이 인파로 가득한 한신백화점 지하보도를 걷고 있는데, 그는 홀로 비탈을 오르는 것처럼-그곳은 편평한 곳이 분명한데- 고통스러워 보였다. 압도된 작가는 "그 뒷모습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고, 그는 폭력의 바깥으로 나갔으되 나가지 못한 이 소설의 주인공 '앨리시어'가 되었다.

마을 전체가 재개발 보상금의 열기에 달뜬 고모리(무덤이라는 뜻)의 소년 앨리시어는 수시로 어머니에게 죽도록 얻어맞는다. 어머니는 "참지 못한다기보다는 참기가 단지 싫은 것"이며 "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내면에 쌓는 일이 귀찮고 구차해 이것도 저것도 마다하고 때리는 데 몰두"한다. 단지 불쾌한 악몽을 꿨다는 이유로 '무적'의 어머니는 앨리시어를 죽일 듯 때리고, 몇 대째인지 세던 앨리시어가 숫자를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또 때린다.

아버지는 새끼 개를 잡아 먹고, 어미 개는 제 새끼 잡는 냄새를 맡으며, 새끼 개의 내장과 뼈가 묻힌 은행나무는 더없이 비옥한 고모리. 먹는다는 것의 폭력적 이미지로 가득한 이 소설에서 통상 xx로 표기되는 욕설 '씨발'은 핵심 주제어 중 하나로 다양한 품사의 파생어를 낳는다. 이 소설의 언어학을 빌려 요약하자면, 어머니는 "씨발적인 상태"에 처하면 그녀의 "씨발됨"을 발현하는데, 폭력의 계보를 살펴보면 또 안타까운 것이 그녀는 '씨발됨'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단지 "포스트 씨발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가계의 폭력의 역사는 유래가 깊다.

소설은 암묵적으로 폭력에 등급을 매긴다. 앨리시어의 어머니에게 폭력의 선대(先代)는 그녀를 죽도록 두들겨 팬 아버지가 아니라 "어디서나 존재감 없도록 겸손하고 사람들이 웃을 때 함께 웃는" 그녀의 어머니다.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밤늦도록 알몸으로 눈밭에 서있어야 했던 소녀 시절의 앨리시어 어머니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방으로 돌아와 "그(아버지)보다 어머니가 궁금"해진다. "어머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내다보지도 않았을까. 죽고 싶을 정도로 나는 씨발 추웠는데 왜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얼굴로 자고 있나. 식구들이 저녁으로 먹고 남긴 수제비 냄새와 낡은 이불깃과 잠든 인간들의 냄새가 섞인 따뜻한 공기 속에서 아주 조용하게 씨발년이 발아한다."(42쪽)

너무나 사랑해서 반드시 지켜주어야만 했던 어린 동생을 잃은 날은 앨리시어가 비로소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위치를 바꿔 폭력 바깥으로 탈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날이다. 밤이면 동생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를 들려주던 앨리시어가 를 변형해 마지막으로 해준 이야기는 이 소설의 구성적 핵심이라 할 만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를 독자의 머리에 각인시킨다.

"앨리스 소년은 토끼를 쫓아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토끼굴로 미끄러졌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상당히 오래 전에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굴속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하고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언제고 바닥에 닿겠지,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는데도 끝나지 않아서, 이게 안 끝나네, 골똘하게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132쪽) 이제는 여장 부랑자가 된 성인 앨리시어가 과거의 이야기를 2인칭의 "그대"-독자-에게 완벽한 현재 시제로 들려주는 것은 그의 전 생애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무한의 구덩이이기 때문이다.

얇은 책이라고 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문장이 난해한 것도, 서사가 지루한 것도 결코 아닌데, 몰입한 상태에서도 독서가 오래 걸린다. 그것은 아마도 시적인 문장은 아니되 시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낯선 문장들이 독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작은 사유들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슬프고 아픈 이 소설을 3부작 연작소설의 첫 편으로 기획하고 썼다. 계간 에 지난해 여름호부터 올 봄호까지 연재한 가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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