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서청원 의원이 10ㆍ30 재보선을 통해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면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독주 양상을 보였던 여권 내 권력지도에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지만 삶의 이력은 뚜렷하게 대비된다는 점에서 '2인자 경쟁'이 가열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서 의원이 19대 국회 최다선인 7선으로 국회에 재입성한 것 자체는 박 대통령에게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그간 김 실장을 통해 여권 전체를 조율해왔지만, 이른바 '댓글 정국'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는 데에서 보듯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의 역할에 대해선 다소 불만스러워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 청와대 인사는 "박근혜정부 첫 해가 다 지나도록 작년 대선 문제로 이렇게 시끄럽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수 십 년씩 정치했다는 사람들이 즐비한데 도대체 새누리당 지도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기류 때문에 서 의원의 여의도 귀환은 표면적으로 여권 전체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청와대에선 김 실장이, 새누리당에선 서 전 대표가 각각 큰 그림을 그리면서 여권의 정국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10ㆍ30 재보선 결과를 두고 박 대통령 친정체제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서 의원과 김 실장의 관계가 마냥 매끄러울 수 없다는 관측이 많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정치라는 게 기본적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 아니냐"며 "두 사람의 관계도 조만간 2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의 울타리를 자임하고 있지만 울타리의 결이 다르다. 우선 인생역정이 사뭇 대비된다.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YS) 전 대통령 곁에서 정치를 시작한 서 의원은 5ㆍ6공화국 시절 군사독재에 항거한 투사였다. 반면 같은 시기에 김 실장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법무연수원장,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그야말로 권부의 핵심에 있었다.
특히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30여년간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 있었던 서 의원은 "야당을 대우해야 정치가 산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야당과 소통하고 타협해야 나라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여권은 물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반면 김 실장은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긴 하지만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와 사정기관장 인사 편중, '이석기 사태' 등의 배후로 지목된 데에서 보듯 당파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원칙적이다.
이 때문에 서 의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금껏 청와대 우위의 일방통행식 당청관계가 일정하게 수평적 관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정면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 의원의 한 측근은 "서 의원이 친박연대 공천헌금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2010년 출소했을 때 김 실장이 저녁식사를 챙겨줄 정도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라면서도 "서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청와대가 아니라 민심의 한복판에 서 있는 새누리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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