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과잉'의 프레임만으로는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를 독해하기 힘들다. 단순하고 자명한 '위법의 논리'는 위법이라는 사실성의 편린을 물고 늘어진다. 해직교사에게 노조원 자격을 부여한 규정은 현행법에 저촉되는 것이 '사실'이니, 법외노조란 결정에 토 달기 어렵다. 이를 '과잉의 논리'가 비판한다. 핵심은 '위법은 있으나' 노조 아님을 통보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정도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 법적용인 만큼 부당하단 얘기다. 대응논리치곤 소극적이고 위험하다. 부당한 법적용이란 주장은 틀리지 않으나, 위법사실도 함께 재확인시켜 주기에 '위법은 위법이네' 식의 즉자적 판단을 제어할 힘이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이 협소한 틀이 작동하는 한 전교조 반대 세력에겐 밑질게 없는 장사다. 적어도 지나친 법적용은 있을지 몰라도 법을 어긴 전교조 역시 잘한 게 없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사태가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로 남는 것은 노조자격 박탈, 교섭공백, 전임자 복귀와 이어지는 기간제교사 해직 등 더 척박해진 교육현장뿐이다.
위법-과잉의 프레임은 전교조 사태가 왜 느닷없이 출몰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 노조의 내부규정이 사회적으로 그렇게도 문제가 되나? 해당되는 해직교사가 아홉 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 전교조로 인해 불편한 문제가 생긴 일도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정부도 지난 14년 동안 조합원 자격규정의 위법성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지금에라도 바로 잡아 법치를 세우겠다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쌍용차 문제나 현대차 불법파견 등 위법을 넘어 불법으로 야기된 노동현안이 산적한 점을 고려하면, 그 사소함으로 법치를 세우려는 '만시지탄의 정의'를 곧이 믿긴 힘들다.
노사관계 범주를 뛰어 넘는 거대한 기획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생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 기획은, 만약 있다면, 국민개조 프로젝트 정도가 될 것 같다.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나 제2의 새마을 운동 주창과 같은 일련의 사안들은 전교조 사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개조라는 기획 아래 하나로 정렬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기획의 노림수는 어린 세대를 향하고 있다. 이 기획자들에게는 어린 세대들이 전교조 교사들에게 포획돼 불온한 역사관과 사회관을 주입 당하는 세대로 비칠지 모른다. 그 불온성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관과 정신개조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왜곡된 역사관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사실조차도 확인하지 않은 부실투성이 역사교과서를 서둘러 검정승인하고, 문제가 불거져도 수정에 소극적이다. 일제시대를 한국근대화에 유용한 역사로 교묘히 바꿔치기 하고자 해도,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으로 근대화를 이룬 내재적 발전의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개발독재의 산업화를 민족중흥의 유일한 모델로 설파한다 해도, 적어도 미래를 견인할 발전모델로서의 효용가치는 이미 상실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민은 아직도 나눔과 봉사, 배려의 정신이 결여돼 있으니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여 정신적 각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정신개조가 필요한 대상은 기득권층일 뿐이다. 국민개조라는 용의선상에서 보면,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은 어린 세대를 순치시키려는 더 큰 기획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교육장관의 엉뚱한 언설도 이 기획의 존재를 암시한다. "조합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라는 어설픈 훈계는 어떤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전교조 교사들이 자신이 선생님이 아니라고 한적 있는가. 외려 아이들 앞에 더 당당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곱지 않은 냉대를 받아가면서도 참교육을 고민한 이들이다. 국민의 정신을 개조하겠다는 기획은 거푸집으로 벽돌을 찍어내겠다는 낡은 토건적 발상일 뿐이다. 애먼 국민을, 피로한 어린 세대를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산업화의 역군' 식으로 호명하려 하지 말라. 국민은 바보가 아니니 어떤 식의 호명이든 실패할 것이다. 약속한 복지와 경제민주화나 차분히 밀고 나가길 당부한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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