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수정ㆍ보완 권고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7개 교과서 집필자 모임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한필협)'가 별도로 마련한 자체수정안을 공개했다. 역사 해석과 관련된 교육부의 지적은 반영하지 않아 수정명령권을 쥔 교육부와 집필진 간의 법적소송이 재연되고, 교과서 채택이 미뤄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한필협이 공개한 자체수정안의 수정ㆍ보완 건수는 총 623건으로 ▲금성 62건 ▲두산동아 83건 ▲리베르스쿨 152건 ▲미래엔 65건 ▲비상교육 97건 ▲지학사 61건 ▲천재교육 103건이다. 지난 21일 교육부가 권고한 578건 외에 출판사별로 4~48건을 자체적으로 고쳐 수정 건수가 늘었다.
한필협 관계자는 "역사교육을 생각해 최대한 교육부의 수정ㆍ보완 권고를 수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다'(금성ㆍ368쪽)라는 단원 제목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교육부 지적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다'고 바꾸었고, '민간인 학살 등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다'(두산동아ㆍ295쪽)고 서술한 베트남 파병 부분은 "양국의 발전적 관계를 고려하라"는 권고에 '민간인 희생'이란 단어로 순화하는 등 출판사들은 교육부 권고의 대부분을 반영했다.
하지만 ▲금성 20건 ▲두산동아 10건 ▲리베르스쿨 8건 ▲미래엔 5건 ▲비상교육 4건 ▲지학사 8건 ▲천재교육 10건 등 교육부 권고의 5~29%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술상의 불균형, 국가정체성 왜곡 등을 이유로 수정을 요구한 주체사상, 북한의 토지개혁 등에 대한 수정 권고가 이에 해당한다. "주체사상 도입에 따른 병폐 등에 대한 균형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은 금성은 '김일성 개인 숭배로 이어졌다'는 점을 이미 서술했다며 수정권고를 반려했다. 비상교육 집필진은 북한의 토지개혁이 경작권만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문을 근거로 수정을 거부했다. 리베르스쿨의 한 집필진은 "전근대 이전은 사실오류를 바로잡으라는 게 대부분이지만 근현대사 쪽은 특정 관점 서술을 요구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강행할 경우 한국사 교과서 갈등은 법정으로 가는 등 더욱 번질 수 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이날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감에서 "수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수정ㆍ보완 대조표의 내용을 검토한 뒤 (수정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수정명령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필협은 1일 교육부에 수정 보완ㆍ대조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한필협 관계자는 "교육부의 수정명령권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 만큼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정명령권이 발동되면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심의위원회를 구성, 재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의 내용을 반영한다고 해도 재인쇄를 하는데 1,2개월이 걸려 올해 12월까지 끝내려던 학교 현장의 교과서 채택ㆍ주문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해 교육부가 수정명령권을 내리지 않고 출판사들의 수정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역사왜곡ㆍ부실논란을 빚은 교학사 집필진 역시 막바지 수정 작업을 끝내고 1일 교육부에 수정 보완ㆍ대조표를 제출하기로 했다. 대표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교육부의 권고안에 따라 수정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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