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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1월 1일] 나의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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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1월 1일] 나의 리즈시절

입력
2013.10.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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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 '리즈시절'이라는 말이 종종 나와 어리둥절했다. 우리 세대의 감각으로는 리즈하면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의미하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역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리즈시절이란 "현재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앨런 스미스선수의 팬들이 앨런 스미스가 과거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리즈 유나이티드 선수시절을 떠올리며 종종 하던 말인 '리즈시절 스미스 ㅎㄷㄷ' 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리즈시절이란 말이 '전성기' 또는 '황금기'를 뜻하는 유사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로 되어 있다. 나이 먹으니 새로운 용어의 수용이 늦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펐지만, 어쨌든 '리즈시절'이라는 표현은 '아??하다' 등 유치하고 생경한 조어에 비하면 비록 외래어이지만 나름 운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즈시절의 뜻을 알게 되니 곧바로 '그 자'가 떠올랐다. 그 자는 '꽁' 또는 '꽁대위'라 불리는 자였다. 다시 말해 그 자의 성은 '공'이고 계급은 '대위'였으니 중대장이었다. 외모나 성, 이름 등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부모에 물려받거나 혈연 등에 의해 정해진 것을 비하하는 일은 잘못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꽉 짜인 군기 속에 복종을 강요당하던 시절에 감시자 곧 상관에 대한 비꼼과 불평 없이는 그 세월을 보내기 힘들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중동부 전선 최전방에서 20대 중반의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낼 적의 이야기이니 벌써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어쨌든 '꽁'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자의 언어와 행동방식은 남을 피곤하게 한다는 일관된 목적의식 하에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참으로 못 말리는 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물심양면(?)으로 주변을 못살게 굴었는데 그 가운데 압권은 "생도 때에는…"으로 시작하는 과거 회상이었다. 다소 느릿한 어조로 "생도 때에는…"하며 만족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꽁대위의 번들거리는 실눈과 비웃듯 살짝 치켜 올라간 입 주변의 침 자국을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그 자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회상에 동참하지 않으면 여러 형태의 가혹한 보복과 응징이 있었으니 우리는 꼼짝없이 초롱초롱한 눈, 존경이 우러나오는 표정과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고 과장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자랑스러운 과거가 실은 조금도 자랑이 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데에 있었다. 꽁은 깡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사병으로 입대했다가 중사로 지원하여 직업군인이 되었고 다시 장교가 되어 대위가 되었으니 사회와 군대의 밑바닥을 잘 알았다. 꽁이 자랑스럽게 회상하는 그 시절은 장교가 되기 위하여 교육받던 1년여의 시기였고 구체적으로는 생도 때 어쩌다 주말외출 나왔을 때의 경험이었다. "생도 때에는 문이 옆으로 열리는 음식점 - 출입구가 미닫이로 된 허름한 음식점 - 에는 출입하지 말라고 했어, 생도의 품위가 무너지잖아", "생도 때에는 외출할 적에 곁눈질을 하지 말라고 했지", "생도는 데이트 할 적에 우산을 들지 않아"등등 시시한 것들이었는데 그 회상은 매일처럼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감탄과 리액션을 요구하였다. 꽁에겐 생도 때가 인간답게 대우받은 몇 안되는 기억이기 때문이리라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 했지만 매번 괴로운 건 우리들이니 진저리가 났다.

같잖은 권력에 취하여 자기 자랑으로 소일하는 인물들을 볼 때면 이미 30대에 조로한 '꽁대위'가 생각나곤 한다. 한편으론 그가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애착을 가졌던 시절이 있던가? 그의 리즈시절은 '생도 때'인데 나의 리즈시절은 과연 언제였던가?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뒷방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떠들 적이었던가, 제대한 그날인가, 연애하던 시절인가, 첫 월급 받던 때인가. 꽁대위의 알량한 회상만큼이나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함이 서럽고 슬프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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