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3세 신문기자 라모씨,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장육부가 보내는 각종 붕괴 신호가 빼곡했다. 건강한 줄 알았는데…. 계속되는 격무와 산업재해 수준인 스트레스와 취재원 관리를 빙자한 방탕한 음주가무의 결과는, 그러나 처참했다. 거울을 보니 눈가의 주름을 다크서클이 포근히 감싸고 있다. 서글퍼지다가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잘못되면 마누라랑 애는? 그래서,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등산으로 정한다. 별다른 준비도 필요 없고, 시간 제약도 없고, 게다가 돈도 그다지 안 든다. 또래 친구들 중에도 요즘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놈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그래, 나라면 안나푸르나도 문제 없을 거야! 그런데 후배 녀석이, 우선 상담부터 받아 보란다. 산에 간다는데 뭔 상담? 귀찮지만, 한 번 받아 보기로 한다.
▲라씨(이하 '라') 어느 산부터 가보는 게 좋을까? 수도권의 산들은 싱거운 것 같고… 이래 봬도 내가 어릴 때 모악산을 뛰어 넘어서 학교를 다닌 사람인데.
▲김성기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팀장(이하 '김') 우선 병원부터 가봐라. 우리나라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인구 중 40대 남자 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 연령대는 운동부하능력부터 측정해 봐야 한다. 특히 심혈관 계통 질병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 건강을 위해서 산에 간다고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도 모르고 무턱대고 산에 올랐다 건강을 망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몸이 몇 시간의 산행을 버텨낼 수 있는지 진단을 받은 다음, 적절한 산행지를 골라야 한다.
▲라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군 생활도 전방 GOP부대에서 할 정도로 튼튼했다.
▲김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오류가 자신이 가장 건강했을 때, 20대 혈기왕성하던 때의 몸 상태에 기준을 두고 산행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의 근육은 15일 정도만 쓰지 않으면 근육 형성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통계를 내보면 20대 때 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 나이 들어 산에서 사고를 당하는 확률이 더 높다. 젊을 때 생각만으로 무리하기 때문이다. 생리학자 야마모토 마사요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행에 필요한 행동체력(fitness for performance)은 20세를 정점으로 1년에 1%씩 저하된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그렇다. 40세 이상은 심한 운동을 하면 육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데, 그걸 완화하려고 아드레날린 계통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 호르몬에 독소가 있어서 혈관을 수축시킨다. 조깅을 세계적으로 보급한 제임스 픽스도 그 나이 즈음 조깅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의기소침해진 라씨, 초보자의 자세로 등산의 기초부터 물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가 알고 있던 등산에 대한 상식은 적잖이 잘못돼 있었다.
▲라 정상까지 왕복을 기준으로 초보자에게 적당한 산의 높이는 어느 정도일까.
▲김 등산의 목적이 왜 정상에 오르는 것인가.
▲라 다들 그렇게 하니까…
▲김 정해진 시간 안에 정상 정복을 목표로 삼는 것은 해외 원정을 떠난 전문 산악인들의 자세다. 깨야 할 기록과 혹한의 날씨와 한정된 예산이라는 조건이 있을 때의 등반 방식이라는 뜻이다.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무리해 정상에 오를 필요가 뭐가 있는가. 정상을 밟는 것과 건강은 별개다. 산을 다녀온 다음날 몸이 뻑적지근하면 운동 좀 했구나 하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데, 근육통이 있다는 것은 몸에 좋지 않는 운동을 했다는 증거다. 뻐근하다는 느낌은 근육세포들이 상처를 입고 나서 8시간 후 오는 신체 증상이다. 근육이 활동할 땐 질소가 배출되는데, 뻐근할 정도로 근육세포가 파괴되면 질소가스가 신장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다른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라 그럼 어떻게 등산을 해야 하는가.
▲김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다. 능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 하고,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 골프나 수영은 열심히 연습을 한 뒤 필드에 나가고 바다로 가면서, 등산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집 근처 약수터라도 꾸준히 오르고, 오를 수 있는 높이까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걷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게 오를 수 있는 산부터 반복해 자주 올라야 한다. 200~300m 높이 산에 조성된 산책로, 그것부터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을 때까지 걸어야 한다. 젊을 때 아무리 날아다녔어도 그건 옛날 일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라씨, 그런데 등산 얘기를 하다 보니 자꾸 칸수가 늘어가는 허리띠에 신경이 쓰인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바람에 덮여 있는 '날씬해지고 싶다'는, 드러내놓기가 왠지 민망한 40대 남자의 욕망. 김 팀장의 '범생이 스타일 산행'으로도 살을 뺄 수 있는 것일까.
▲라 체중을 줄이려면 조금 무리한 산행도 필요하지 않을까. 적잖은 사람들이 살을 빼려고 산에 가는데.
▲김 음식을 섭취하면 에너지의 2%는 탄수화물, 13%는 단백질, 나머지는 모두 지방으로 저장된다. 몸이 활발히 지방을 분해하는 산행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 지방은 격렬한 운동을 할 때보다 저중강도 운동을 할 때 잘 분해된다. 이 강도는 주관적인데, '헉헉' 숨을 몰아 쉴 때가 고강도, '후우후우' 편안한 호흡을 할 때가 저중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지방을 분해할 때는 반드시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고강도 운동을 하게 되면, 몸은 지방 분해를 멈추고 탄수화물만 분해한다. 그리고 탄수화물이 바닥나면 단백질을 태우기 시작한다. 정상을 향해 무리해 오를수록 살은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라 어차피 탄수화물이 2%밖에 없다면 지방을 태울 재료도 부족한 것 아닌가.
▲김 맞다. 한 시간 반 정도 산행하고 나면 다 소진된다. 그래서, 산행으로 살을 빼려면, 오히려 꾸준히 먹어줘야 한다.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늘 뭔가를 씹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탄수화물, 구체적으로는 단당류 에너지원이다. 건포도나 곶감 같은 건과일이 좋다. 산행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30분에 한 번씩 24g 정도, 곶감 하나 정도의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
먹어서 살을 뺀다는 말에 속으로 반색하는 라씨, 당장 등산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구체적인 준비물을 물어본다.
▲라 장비는 무엇부터 준비하는 게 좋은가. 등산복은 아무래도 고어텍스로 준비해야겠지.
▲김 고어텍스가 왜 필요한가.
▲라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보온도 필요하고…
▲김 고어텍스는 보온 기능이 없다. 방풍, 방수, 투습 기능으로 신체의 보온 상태를 보호해줄 뿐이다. 남들이 뭘 산다고 따라 살 필요는 절대 없다. 조금씩 산행을 해보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하나씩 보충하면 된다. 그리고 비싼 걸 사기보단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쓰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요즘 무릎보호대를 많이 하는데, 이건 오를 때가 아니라 내려올 때 도움을 되는 장비다. 오를 때 쓰면 오히려 근육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라 그래도 나 같은 초보자가 잘 챙기지 않는 것 하나만 꼽으면.
▲김 아까도 얘기했듯이 음식이다. 막걸리, 족발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수백만원짜리 등산복보다 제대로 된 에너지원이 훨씬 중요하다. 등산 중 걸으며 먹는 단당류 음식을 '행동식'이라고 부른다.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에서 다치거나 조난을 당했을 때, 몸을 옷으로 감싸게 되는데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먹는 일이다.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사망 사고 환자를 보면 사지가 멀쩡한 경우가 많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탄수화물을 가장 많이 쓰는 기관이 뇌인데, 뇌에 에너지 공급이 안 되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도움말 김성기(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팀장ㆍ 저자)
필수적인 등산장비 고르는 팁
유상호기자사진=배우한기자
내의
겉옷보다 훨씬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면은 땀을 잘 흡수하지만 배출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한다. '쿨맥스' 등 속건성 소재로 만들어진 내의를 고른다. 타이즈 형태로 몸에 꼭 달라붙는 내의를 입어야 땀이 피부로 흐르지 않고 바로 흡수된다. 등산복에 요구되는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발휘하는 옷감은 아직까지 발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기능을 지닌 소재의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링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 중에 가장 신경 써서 골라야 하는 것이 내의다.
배낭
우선 용량이 넉넉한 것을 고른다. 작은 배낭을 메면 물건을 힘들여 구겨 넣어야 하기 때문에 넣고 빼기가 귀찮게 느껴진다. 옷이나 행동식을 꺼내는 일이 번거로워서는 안 된다. 꼭 체크해야 할 부분은 어깨끈. 어깨끈을 조절해 배낭이 상체의 윗부분에서 몸에 밀착되도록 해야 한다. 무게가 지탱되는 밀착면이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피로도가 커진다. 무게의 30% 가량을 받쳐주는 허리밴드는 접착면이 넓어야 한다.
등산화
산행 대상지와 산행 기간에 따라 적절한 등산화를 고른다. 지리산처럼 흙이 많은 산에서는 바닥창에 요철이 많은 것이 좋다. 설악산 같은 바위산에서는 마찰력과 접지력?좋은 부틸고무 성분의 바닥창이 적합하다. 대형 배낭을 메고 장기간 산행을 할 때는 발목이 높고, 바닥창이 두꺼운 등산화를 선택한다. 발목이 높게 올라와야 내리막에서 발목 근육을 지지해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요즘 같은 가을철에도 낙엽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발목이 높은 것이 좋다.
모자
햇빛을 가리는 목적뿐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도 모자가 꼭 필요하다. 머리는 체온 조절의 30~50%를 담당하며 열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부위다.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보다 썼을 때 이마에 닿는 부분의 재질을 꼼꼼히 살핀다. 이 부분의 착용감이 부드럽고 땀을 잘 흡수ㆍ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착용감이 나쁘면 모자를 벗고 있기 쉬운데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철이 아니더라도 바라클라바(안면을 덮는 모자)를 하나 준비하면 좋다. 접어서 비니처럼 썼다가 보온이 필요할 때 덮어 쓴다.
등산할 때 요긴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바야흐로 등산도 스마트 시대. 스마트폰에 깔아 놓고 산에 오르면 쏠쏠한 도움을 주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소개한다.
트랭글 GPS
내비게이션 기능이 있어 GPS를 이용해 전국 등산로와 함께 자신의 위치를 안내 받을 수 있다. 57개 국ㆍ도립 공원과 주요 산의 전용 지도를 지원한다. 구조대 연락처, 일출ㆍ일몰 시간 정보 등도 확인 가능. 산행 이력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
톡톡산행
소설네트워크 개념의 감성 아웃도어 앱. 다른 산행인과의 교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련한 산꾼들의 산행 후기도 볼 수 있다. GPS를 이용한 상세 정보를 제공한다. 이동 속도, 칼로리 소모량, 이동 시간 등을 다이어리에 저장해 나만의 등산 일기도 작성할 수 있다.
나들이
네이버, 다음, 구글의 지도 서비스를 지원한다. 등산이나 하이킹 등 이동한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오프라인 지도 기능이 있어 네트워크가 지원되지 않는 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멤버 간 위치 공유 기능도 있다. 자신의 위치를 SMS로 전송하는 기능은 위급할 때 유용하다.
e산경표 등산지도
10년간 축적된 궤적 데이터로 백두대간 9정맥, 140지맥, 4,000여 산의 등산로를 안내한다. 20개의 등산 지도를 무료로 제공하고 유료 지도도 구매할 수 있다. 여러 날에 걸친 궤적 저장 및 확인 기능도 있다. 1,000여개의 산악자전거(MTB) 코스도 안내한다.
맵팟 마운틴 등산지도
내장지도를 이용해 깊은 산속에서도 정확한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지형도와 항공사진을 볼 수 있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100대 명산 정보도 탑재돼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연동해 실시간으로 산행 정보를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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