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간부가 산하 기관 길들이기에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찍어내기' 하겠다는 위협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문체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심재찬 전 대표와 인터넷 뉴스 방송 '뉴스타파'의 녹취 음성파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김상욱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이 심씨와 재단 직원들을 불러놓고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찍어서 자르겠다"고 말했다. 심씨는 이에 모욕감을 느껴 지난 17일 재단 대표에서 물러났다.
심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김 과장은 대외비로 분류된 재단의 예술인 지원 심사위원회와 지원자 명단을 요구했고, 이에 의문을 제기하자 '말을 듣지 않으면 자를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며 "재단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예술인복지법 시행에 따라 지난해 11월 출범한 기관으로, 연극 연출가인 심씨가 초대 대표를 맡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해 보도한 김 과장과 심 대표의 대화 녹취 음성파일에는 정부와 산하기관의 이른바 '갑을관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말들이 담겨있다. 김 과장은 "문체부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기관'에서 예술인 지원 심사위원회 명단을 요구한다"며 "앞으로 재단 직원 몇 명을 직접 자를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실제 김 과장이 이 말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단 직원 한 명에 대해 문체부로부터 해고 요구를 받았고 결국 권고사직으로 처리했다"며 "비록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직원이지만 3개월 감봉이면 충분하다는 내 의견이 끝내 무시됐다"고 밝혔다.
녹취 파일에 따르면 김 과장은 대외비 자료 요구가 '정보기관의 요청'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고위층'에서 독촉이 있었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압박감도 드러나 있다.
심씨는 "정확히 누가 요구한 것인지, 무슨 이유로 명단을 달라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신생기관을 길들이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에 대해 "당시 벌어진 일에 대해 모두 말할 수는 없다. 공개된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집행 미비 등 문제점을 지도감독하기 위해 담당과장이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면서 타 기관을 예로 들어 과장되게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하지만 부적절한 언행이 확인된 만큼 해당 과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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