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열린 중국 베이징 마라톤 대회가 선수들의 대대적인 노상방뇨로 얼룩졌다고 한다. 국내외 참가자가 3만 명이 넘었는데, 간이화장실이 부족한 데다 ‘노상방뇨가 이 대회의 전통’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노상에서 ‘볼일’을 보는 바람에 “도로가 소변으로 내를 이뤘다.”고 중국 신경보(新京報)가 보도했다.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라는 의 한 대목이 저절로 생각났다.
한국 신문과 TV에도 보도된 노상방뇨 장면을 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자금성 외곽 성벽 등에서 무단 방뇨를 하는 참가자들 중에는 앉아 쏴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베이징 마라톤은 거리에서 볼일을 보는 게 전통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여성 참가자는 “달리는 도중 몇몇 간이화장실 앞에 선수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노상방뇨’는 과거 수년 동안 대회가 열릴 때마다 간이화장실이 부족해 자연스레 전통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0년 대회 직후 참가자들이 간이화장실 증설을 건의했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화장실 수가 턱없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노상방뇨’가 재미있는 전통이라고 여겨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해로 33년을 맞은 베이징 마라톤 대회는 세계 10대 마라톤 대회의 하나인데, 아직도 이 모양이니 우스운 일이다.
남들 보기에 체면이 깎여서 그렇지 노상방뇨를 하고 나면 시원한 게 사실이다. 여성의 경우 소변이 마려워도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달리,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지퍼를 풀고 볼일을 볼 수 있으니 편리하다. 심지어 “이 세상에 여성화장실이라고 써놓은 곳 빼고는 다 남자화장실이다.”라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런 데다 우리나라는 노상방뇨에 관대한 편이다. 몇 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 온 사람이 귀국 동기를 묻자 이런 대답을 했다. “친구들과 폭탄주 마시고 골목 아무데나 오줌 누고 싶어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깔끔하고 규칙적이고 그래서 답답하고 각박하고 숨 막히는 일본생활에 어지간히 지쳤던 모양이다.
몇 년 전 술을 잔뜩 마시고 어느 으슥한 담벼락에 실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와 비슷한 술꾼 하나가 내 옆에 와 서더니 시원하게 오줌을 누면서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봅니다.”하고 말을 걸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대꾸를 하지 말까 하다가 “그런 것 같네요. 좋은 인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고 응수했다.
노상방뇨를 하는 것은 경범죄처벌법 위반행위이다. 쓰레기 방치, 자연 훼손, 노상방뇨, 담배꽁초 버리기, 도로 무단횡단,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공중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는 다 범칙금 부과 대상이다.
범칙금을 내지 않을 경우 즉결심판에 회부되는데 판사가 사건의 내용을 파악, 범칙금이 아닌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그러나 경범죄는 관행상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3년 시효가 지나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아 상습 미납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한다.
자료를 찾다 보니 노상방뇨는 범칙금이 3만~5만원으로 돼 있었다. 절로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경우에 3만원이고 어떤 경우에 5만원이지? 남자들은 볼일을 보고 나면 누구나 다 흔들고 터는데, 고스톱에서 흔들면 2배인 것처럼 남자들은 돈을 더 내야 하는 걸까? 그러면 왜 3만원~6만원이 아니지? 좀 봐주는 건가?
이게 너무도 궁금해서 어느 날 작심을 하고 경찰서 지구대(예전 파출소)에 찾아가 물어보았다. 남자는 흔들어서 두 배를 내느냐는 말도 잊지 않고 했다. 그러자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경관은 담배꽁초를 버리면 3만원, 노상방뇨는 5만원, 딱 이렇게 돼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자료를 잘못 읽은 것이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지구대를 나섰지만 궁금한 게 더 있었다. 노상방뇨는 그렇다 치고 노상방분을 하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설마 노상방분은 괜찮은 게 아니겠지? 큰일을 치르다 보면 작은 게 저절로 나오던데... 그러나 나는 이걸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 경관이 또 위아래로 훑어볼 테니까. 아마 똑같이 5만원을 내야 될 것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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