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학에 따르면, 협상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합의 결렬시 최선 대안(BATNA)' 또는 '결렬대안'이라고 한다. 또한 모든 협상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합의가능영역'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협상학의 주요 개념을 통해 북핵협상을 이해하고, 핵협상의 성공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자.
'결렬대안'은 협상 결렬 시 나의 옵션이다. 연봉협상을 할 때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협상 결렬에 대비하여 '결렬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다른 회사로부터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거나, 또는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등 좋은 '결렬대안'이 있다면 강력히 협상할 수 있다. 이런 대안이 없다면 불리한 연봉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다. 회사도 유리한 협상을 위해 최선의 '결렬대안'을 준비할 것이다. 대체인력을 확보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의 '결렬대안'을 약화시킨다.
'합의가능영역'도 합의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협상당사자들이 생각하는 최대양보선이 공통분모를 갖지 않는다면, 즉 '합의가능영역'이 없다면 합의가 성사되기 어렵다.
우선 북핵협상에서 '결렬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에게 비핵화를 실현하면 외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제공하지만, 실패하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상식적이고 타당한 입장이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만약 비핵화의 길로 가면, 김정은 정권과 공산체제에 대한 내부 주민과 외부 세계의 도전이 더욱 거세어지고, 체제위기와 정권위기도 악화될 것으로 본다. 또한 미국의 체제전환과 정권교체, 남한의 흡수통일 기도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본다.
반면 북한이 핵협상을 거부하고 핵개발을 지속한다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가 강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핵무장이 김정은 정권과 공산체제를 보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더욱이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위기와 식량위기의 고통은 북한주민에게 전가되고, 핵무장의 체제보장적 혜택은 집권층이 가지므로 제재의 효과가 반감된다.
이렇게 보면, 북한에게 핵협상과 핵합의는 결코 좋은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협상이 결렬되어 핵개발을 지속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본다.
북핵협상에서 '합의가능영역'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한다. 극심한 불신관계에 있는 미북에게는 목표치가 바로 최저양보선이며, 합의가능한 공통분모가 없다. 그 동안 수 차례 핵합의가 있었지만, 모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이며 시간 벌기를 위한 기만에 불과했다.
향후 성공적 핵협상을 위해 아래와 같이 협상학이 주는 시사점에 유의할 것을 제기한다.
첫째, 북한과 한반도의 특성으로 인해 비핵화를 위한 대북 압박은 한계가 있다. 북한은 폐쇄적 독재국가로서 외부 위협에 대한 저항성이 높다. 또한 한반도의 특성과 북한 핵능력 진전으로 인해 무력행사 옵션이 사실상 배제되어 대북 압박의 한계가 있다. 둘째, 북한의 '결렬대안'을 악화시켜야 한다. 현재 북한이 핵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협상 결렬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 거부에 대한 제재는 더욱 아프게 하고, 협상 참여 시 보상은 더욱 달콤해야 한다. 특히 제재의 효과를 위해 중국과 국제사회와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셋째, 최저양보선을 설정하고 이를 강요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 한다. 추가 핵실험, 핵역량의 현저한 증가, 핵무기 실전배치, 핵무기와 핵물질 해외이전 등을 최저양보선 또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이를 강요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다. 강요수단이 없는 레드라인은 오히려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마지막으로, 핵협상의 '합의가능영역'을 찾기 위해서 현 낮은 신뢰수준을 감안한 단계적 접근과 포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단계적 포괄적 접근을 전제로 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비핵화를 위한 합의가능영역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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