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들은 흔히 '책'이라는 매체와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모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거의 물신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을 비교해보면 이 오래된 신화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두 사람 중에서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라면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다. 중국에 가서 풍우란의 를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어떤 종류가 됐든 텍스트를 매개로 삼은 연설문이 종종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정치적 반대파들은 박대통령이 읽지도 않은 글을 소개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책을 언급하는 이가 전혀 그렇지 않은 이보다야 많이 읽을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을 둘러싼 일화들을 살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책과 담쌓은 인생을 살아온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종종 무언가를 읽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말하기를 훨씬 좋아하는 것은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일방적인 소통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재임 중 라디오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떠들기도 했다.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은 별로 길지도 않은 내용의 입장 표명을 총리를 통해 하는 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다른 사람에게 뭔가 길게 말을 하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는 듯하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두 사람의 삶의 경로를 통해 추리해보자면 이렇다. 회사원에서 출발해 사장까지 오르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은 말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자신의 단점이나 과오는 덮고 장점이나 성과는 부각시키는 화술이 필요했다. 체계적이거나 일관성 있는 말하기를 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신이 궁할 경우 상대방의 주의집중을 흩트리는 화술이라도 발달시켜야 했을 것이다.
반면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사람은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녀는 나락을 경험했을 테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독서를 더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대화는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도, 아버지의 정치적 자산을 충실히 상속했기 때문에 그래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소수 측근들에게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고 실행을 지시하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정치를 해왔던 것이 최근의 통치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외국어 구사능력을 보면 지적 능력이 보통 이상은 될 텐데도 TV토론에서 상대방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와는 별개로 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아온 이들은 그 책의 내용을 남들과 진지하게 토의할 수도 없고 심지어 말하기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일까? 그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책을 안 읽어온 표본이기 때문에 일어난 보기 드문 역전현상일 뿐일까? 독서가들을 제법 만나본 나는 다른 직관을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특정한 관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내용을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과 대화를 할 필요성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책의 내용을 훨씬 덜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자기 분야의 책을 읽고 토의하는 게 직업이라 할 수 있는 학자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의구심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어떤 불균형은 그만의 것은 아닌 셈이다. 제법 책을 많이 읽은 이들이라도,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 대화를 하더라도 다른 관점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관성적 대화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다. 그는 읽은 것을 이해했다고 믿지만 그저 익숙해진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책이 제아무리 훌륭한 매체라도 '말의 세계'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대화가 없는 말은, 죽은 말에 불과한 것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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