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 일제 식민지시대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고아들을 돌봐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故) 윤학자(일본명 다우치 치즈코) 여사의 탄생 101주년 기념행사 이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31일은 그의 생일이자 45번째 기일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에는 라종일 전 주일대사, 오태규 관훈클럽 총무,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 신문 주필, 공로명·유명환 전 외교부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라 전 대사는 이 자리에서 '윤학자 탄생 101주년에 생각하는 한일 관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1912년 일본 고치시에서 태어난 윤 여사는 1919년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던 부친을 따라 목포로 건너와 유달초등학교와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복지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목포 거지왕' 윤치호씨가 세운 '공생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아이들과 정을 쌓았다.
해방 후 반일감정도 심해졌지만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한결 같았다. 윤치호씨와 결혼해 일본 이름을 '윤학자'로 바꿨고 친자식들을 공생원의 고아들과 함께 키웠다.
6ㆍ25 전쟁은 공생원에 큰 위기였다. 식량 배급을 받으러 나갔던 남편이 행방불명돼 혼자 400명의 고아들을 떠맡아야 했다. 결혼 때 일본에서 가져온 오르간, 기모노 등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필사적으로 공생원을 지켰다. 그의 손을 거쳐간 고아는 3,000여명에 달했다.
정부는 윤 여사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63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68년 10월 31일 공생원에서 생을 마감한 윤 여사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이자 '성녀'로 남아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와 같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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