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사법부는 죽었다. 정말 이런 세상이 싫다." "영혼 없는 베끼기 판결이다."
5ㆍ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등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전사모) 회원 10명에게 대구지법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30일, 5ㆍ18단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속으로만 삭혀왔던 분을 토해냈다. 5ㆍ18 유족 정모(83) 할머니는 "그 놈들이 무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슴이 또 벌렁벌렁거렸다"며 "법원이 그때(5ㆍ18 당시) 군홧발에 짓밟히고 고문을 당해 시름시름 앓다가 숨진 내 아들을 두 번 죽인 꼴"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사모 회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을 놓고 광주가 또 다시 상처를 받았다. 5ㆍ18 단체와 시민들은 "이번 판결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있는 5ㆍ18왜곡과 폄훼를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일각에선 "극우ㆍ보수세력 눈치보기 판결 아니냐"는 격한 반응까지 터져 나왔다.
5월 단체들은 이날 대구지법이 전사모 회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베끼기 판결"이라고 맹비난했다. 5ㆍ18부상자회 신경진 회장은 "대구지법의 판결문이 지난 1월 대법원이 5ㆍ18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보수논객 지만원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과 조사 몇 개만 틀릴 정도로 문구와 내용이 흡사하다"며 "대법원 판결문을 그대로 베낀 재판부가 이번 판결을 위해 고민을 하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지씨는 2008년 1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필자는 5ㆍ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등의 글을 올려 5ㆍ18유공자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5ㆍ18 민주화운동이 법적ㆍ역사적 평가가 확정된 상태다. 하지만 지씨의 비난이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로는 볼 수 없다"며 무죄 확정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한동안 조용했던 5ㆍ18 왜곡과 폄훼 행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회사원 주정훈(45)씨는 "지만원씨가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인터넷에 나처럼 하면 죄가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전사모 회원들도 지씨가 무죄를 선고받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며 "결국 이번 판결도 '5ㆍ18을 왜곡ㆍ비방해도 이렇게 하면 무죄다'라는 잘못된 인식과 학습효과만 높여준 꼴이 된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특히 이번 판결이 법적ㆍ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5ㆍ18에 대한 소모적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사모 회원들이 면죄부를 받으면서 이들이 주장하는 5ㆍ18북한군 투입설 등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5ㆍ18기념재단 송선태 상임이사는 "전사모 같은 5ㆍ18왜곡행위가 나오지 않도록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판결을 기대했는데 되레 논쟁의 빌미만 제공했다"며 "이번 판결은 5월 영령과 5ㆍ18관계자, 5ㆍ18진상규명을 위해 힘써온 분들에 대한 정신적 모욕으로, 언젠가 이 판결도 역사적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5ㆍ18관련자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과 5ㆍ18역사왜곡 행위가 계속 되면서 유럽의 홀로코스트방지접 같이 국가가 결정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왜곡ㆍ폄훼하지 못하도록 입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ㆍ18역사왜곡대책위원회 관계자는 "5ㆍ18민주화운동처럼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고 그 가치와 정신이 확립돼 있는 민주화운동을 더 이상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우리사회에 소모적 논란이 반복되지 않는다"며 "관련법안 제정을 의원발의로 할지, 입법청원으로 할지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