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노인ㆍ장애인의 의료 접근성이 커져 만성질환의 상시적 관리가 가능해지고 1차 의료기관 활성화에도 기여한다고 보건복지부는 전망했다. 하지만 환자와 의료기관이 초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다 노인들이 익숙지 않은 통신장비를 이용할지도 의문스러워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할 것인지 불투명하다.
환자 장비 비용만 100만원대
원격진료의 기본 개념은 환자 스스로 혈당이나 혈압 등을 측정해 그 정보를 컴퓨터나 휴대폰 등으로 의료기관에 보내면 의료진이 이를 분석해 다시 환자나 약국의 컴퓨터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나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10만원 안팎의 혈당∙혈압측정기 등은 그렇다 쳐도 전송장치인 게이트웨이 구입 비용만 80만원에 달한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화상장비까지 갖추려면 100만원 이상 드는 셈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원격진료 대상 환자는 최대 847만명으로 ▦만성질환자 585만명 ▦정신질환자 88만명 ▦도서벽지 주민 18만명 ▦노인ㆍ장애인 91만명 ▦군ㆍ교도소 제소자 59만명 등이다. 이들에 대한 수요조사는 아직 없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데다 만성질환자가 대부분 정보통신기술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인 것을 감안하면 실 수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노인들은 직접 의사 얼굴을 보고 진료를 받는 것을 선호하는데 어느 노인인 자기 돈을 들여가며 화상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송장치를 구입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의료접근성 오히려 떨어질 것"
의원급 의사들의 반응도 냉랭하다. 개업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는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수술 후 재택환자는 병원급에서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어 초진부터 대형병원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늘 것"이라며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10~20년이 지나면 동네의원이 줄어 의료접근성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도 "복지부가 원격진료를 실시하는 미국의 사례를 드는 데 그런 나라는 땅덩어리가 넓거나 의사 수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차선책으로 도입한 것"이라며 "의료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에는 도입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의원들 역시 서버 설치 등 원격진료 장비 구입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여 선뜻 동참할 의료기관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산업계가 제약업계와 연합해 원격진료장비를 구입하는 대가로 약을 싼 값으로 공급하는 등의 패키지 상품을 내놓을 경우 참여 기관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최근 통신망 업체들이 로비를 위해 국회를 드나든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고 업체들이 통신망과 측정기, 전송장치 등을 묶어 효도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며 "원격진료가 결국 산업계 배만 불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부처에 밀린 복지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원격진료에 반대 입장이던 복지부는 원격진료를 창조경제 실현 과제로 삼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경제부처에 밀려 백기를 든 것으로 분석된다. 복지부는 이달 초에도 원격진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려다 미루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입법예고안이 경제부처와 협의해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기재부나 산업부 입장이 반영됐다면 상급병원까지 원격진료를 허용했을 것"이라며 "환자 편의 증진과 1차 의료활성화를 위해 (복지부가) 독자적으로 제도를 설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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