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새로운 과세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어 의료계와 과세당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9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이 모인 대한임상시험센터협의회 소속 20여 개 병원 의사들은 "신약 개발의 필수 단계이자 환자 진료의 일환인 임상시험에 세금을 매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성토하며 과세의 불합리성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과세당국은 "제약회사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병원(의사)에 발주한 연구 용역 형태인 임상시험은 적법한 과세 대상"으로 보고 현재 부가가치세 부과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논란이 불거진 건 2개월여 전 한 대학병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임상시험에 대한 부가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은 뒤부터다. 이 병원은 과세당국에 이번 세금이 적법한 지를 묻는 과세적부심을 청구한 상태다. 임상시험은 '연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부가세를 매기지 않아왔다는 이유다. 이후 몇몇 대학병원들도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른바 '빅5'에 속하는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서울지방국세청의 자료 요청에 따라 제약회사 임상시험 용역 관련 계산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의뢰를 받은 의사들은 실제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에게 해당 회사의 약을 처방하고 경과를 논문이나 보고서 등으로 발표한다. 때문에 "임상시험은 면세 대상인 '의료 행위'와 '학술 연구'로 봐야 한다"는 게 병원들의 입장이다. 지난해 서울은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진행되는 도시로 기록됐다. 많은 환자가 몰리고 의료 수준이 우수한 덕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병원을 임상시험기관으로 선호한다. 한 대학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임상시험 과세가 현실화하면 일본이나 대만, 인도 등 주변 경쟁국에 시장을 뺏기고, 환자들이 싼 값에 신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세당국은 그러나 병원이 임상시험으로 일반적인 진료 외의 추가 수익을 제약사로부터 얻기 때문에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는 논리다. 국가임상시험사업단에 따르면 실제로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 주요 병원의 임상시험센터 15곳이 지난해 임상시험으로 수주한 금액이 2,8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07년(700억원)보다 4배 늘었다. 사업단은 이 중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선 "보건당국은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한다며 병원에 경쟁적으로 연구 역량을 강화하도록 독려하면서 과세당국은 물 밑에서 임상시험 과세로 세수 부족을 해결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마땅히 과세해야 하는데 (관행 등의 이유로)면세해왔던 세원을 발굴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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