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는 기업하기 좋게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친다고 하는데, 정작 기업들은 늘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이유가 뭘까. 같은 날 발표된 두 국제기구의 보고서가 한국에서 기업하기의 명암을 분석하고 있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세계은행(W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기업 환경과 관련, 180도 상반된 국제비교 통계를 이날 내놓았다. WB는 기업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한 반면, OECD는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금융회사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WB는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에서 한국의 기업환경을 조사대상 189개국 가운데 7위로 평가했다. 이는 역대 최고 순위이며, 지난해보다 한 단계 상승한 것이다.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국가는 싱가포르 홍콩 뉴질랜드 미국 덴마크 등에 불과했으며, 같은 동아시아 지역의 일본(27위)이나 중국(96위) 등 보다는 훨씬 높았다.
한국의 순위 상승은 창업소요 시간과 건축인허가 비용 등 8개 지표가 작년보다 개선된 데 따른 것이라고 기재부는 분석했다. 특히 법적분쟁해결(2위), 전기연결(2위), 국제교육(3위)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됐는데, 한국의 전자소송 시스템은 WB가 우수 사례로 별도 소개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속적인 규제 개혁 노력으로 법과 제도 같은 기업 환경의 하드웨어는 국제 수준까지 향상 됐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반면 OECD는 '각국의 벤처기업 정책'(Policies For Seed and Early Finance)자료에서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도 최악의 금융회사들과 거래하고 있다는 내용의 통계를 제시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앞다퉈 빌려주다가도 상황이 나빠지면 대출을 마구 회수하는 '비 올 때 우산 거두는' 악덕 행태의 전형을 한국 금융권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주요 40개 국가에 대한 '대출 접근성'평가에서 한국은 7점 만점에 4.5을 받아 15위로 평가됐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2011~12년)에는 '대출 접근성'지수가 2.2점으로 급전 직하하고, 순위도 35위로 급락했다. 이 기간 중 지수가 한국보다 큰 폭으로 하락한 곳은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아일랜드(4.6점→1.8점) 등 2개국에 불과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한국 기업보다 대출 받기가 어려웠던 일본(3.4점→3.1점), 이스라엘(4.1점→3.4점), 중국(2.7점→3.1점)의 기업들은 요즘은 훨씬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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