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권력 교체'와 가장 닮은 우리 역사입니다. 그런 슬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15, 20년 안에 국제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이 시기에 정치 지도자들의 전략적인 사고가 절실합니다."
임진왜란, 정묘ㆍ병자호란 등 전쟁사를 중심으로 조선사를 연구해온 한명기(51ㆍ사진 왼쪽) 명지대 교수는 29일 신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한 교수의 동갑내기 부인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소설가 유선주(필명 유하령)씨의 병자호란을 다룬 첫 장편 역사소설 출간도 함께 기념하는 자리였다.
한 교수는 일간지에 2년 연재한 병자호란 이야기를 고쳐 낸 이번 책에 '역사평설'이란 부제를 붙였다. "역사를 교과서처럼 사실대로 나열하는 것과 필자의 관점을 담은 논문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史實)에 충실하면서 나름의 관점을 담아 소설을 써낸 대만 출신 일본 역사소설가 진순신의 작업에 빚 진 부분이 있습니다."
역사책이건, 소설이건 병자호란을 다룬 서적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이나 대중들이 병자호란에 관심을 보인 건 주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ㆍ세 번 땅에 머리를 조아림)했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 교수는 "국력이 약해 병자호란에 패하면서 끌려간 조선인이 30만에서 50만을 헤아린다"며 "당시 조선 인구의 10% 안팎을 헤아리는 이런 치욕의 역사가 병자호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10년에 주목한다. "정묘호란 이후의 '잃어버린 10년'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이 할 수 있는 대비를 최대한 했더라면 병자호란을 맞지는 않았을 겁니다." 후금에서 청으로 거듭나는 대륙의 정세 변화를 제대로 읽고, 그 틈새에서 국력을 강화해야 했다는 뜻이다.
유 작가 역시 병자호란 당시 끌려간 조선인에 주목하면서 그 중 '화냥년'으로 매도 당한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복원했다. 소설은 '오랑캐'에게 끌려갔다 가족에게마저 버림 받는 핍진한 삶을 살아온 '화냥년'들이 랴오둥 벌판 초입의 산간에 그네들만의 마을을 꾸린다는 '픽션'이 백미다.
작가는 "병자호란 이후 속환한 여자들을 '화냥년'이라 하고 그 말이 '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의미의 '환향녀(還鄕女)'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에서 그는 이 말의 어원을 이미 성종 때 기록에 등장하는 '화낭(花娘)'이라고 밝혔다. 임진왜란 때 조선 여자와 명군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이 말은 중국말로 '몸 파는 여자'라는 뜻이다.
글ㆍ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