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어 달 전의 일이다. 페루에서 4,000만 달러 규모의 다목적 수송함 공급계약에 사인한 순간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중남미에 처음 한국의 조선기술과 기자재를 수출하는 물꼬를 튼 것이다. 코트라가 정부를 대표해 외국 정부기관과 협상하고 우리 기업의 일반물자 수출계약을 직접 지원한 두 번째 성공사례였다. 지난 연말 3,000만 달러 규모의 스마트 경찰차 수출계약에 이어 불과 8개월 만에 다시 G2G(정부간 거래)가 성사되자 긴 여정으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11월 국산훈련기 KT-1 20대의 수출계약을 포함해 이번에 다목적 수송함까지 공급하게 되자 페루의 정부 인사는 "하늘과 땅과 바다를 모두 한국산 제품으로 채우게 됐다"면서 흐뭇해했다.
정부가 계약체결과 이행, 그리고 사후관리까지 책임지고 보증하는 G2G는 최근까지 방산물자에 한해 이뤄져 왔다. 그러다가 우리 기업과 코트라, 그리고 해외공관이 협력해 일반물자까지 G2G 시장을 넓히게 됐다. 계약이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코트라가 지원하겠다는 것을 외국 정부에 약속해 우리 기업이 공개입찰 없이 대규모 수의계약을 맺게 돼 보람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
일반물자 G2G는 우리나라 수출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 브랜드와 신뢰도를 활용해 신시장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계약이 발표되자마자 인근 국가에서도 동일한 품목에 대해 G2G 구매협상을 제안해와 G2G는 중남미 국가들의 새로운 조달방식으로 급부상할 것 같다. 여건상 자국의 민간 부문을 통한 조달이 어려운 신기술과 대규모 국책 사업이 우선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ITㆍ의료ㆍ조선ㆍ치안ㆍ신도시 건설 등이 대표적인 분야이다. 중남미 국가를 비롯해 개도국의 정부는 G2G를 현지의 부정부패를 해소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만큼 시장성이 기대된다. 우리도 과거에 경험했듯이 개도국들은 공개입찰 때 기존의 민간 공급처들과의 유착과 담합을 단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G2G는 외국 정부의 요청을 받으면 코트라가 우리 정부를 대신해 수행업체의 계약이행을 지원하고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도국의 일반물자 G2G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높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가 된 우리의 개발경험은 개도국들에게 롤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은 개발경험을 전수 받기 위해 미국, 일본, 중국이 아닌 우리를 G2G 파트너로 선택하려 하고 있다. 엊그제 열린 유엔 조달시장 설명회에서 만난 유엔기구 조달책임자들도 우리 정부와 기업이 보다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인식을 십분 활용해야 할 때다. 실리와 공헌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역량과 지혜가 요구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유엔 조달시장과 G2G시장은 반드시 개척해야 할 블루오션이다. 유엔 조달시장의 경우, 2012년 기준 시장규모가 153억 달러인 반면에 우리 기업들의 진출실적은 5,267만 달러로 전체의 0.34%에 불과하다. 우리 기업들이 유엔 조달시장에 보다 적극 진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유엔 조달시장 진출을 확대하면 그만큼 신뢰도가 높아져 G2G 시장개척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G2G 시장은 단순한 신시장이 아닌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경협모델로 인식해야 한다. 멀리 보고 상생의 무역을 추구할 때 경제적인 실리를 얻고 국가 브랜드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 모두 시궁창 속에 있지만 그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stars)"라고 말했듯이, 최빈국의 하나였던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먼저 길을 간 사람으로서 후발 개도국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별'이 되면 좋겠다.
오영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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