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회자되는 정치풍자나 유머를 '카톡'으로 전해 주는 지인이 하나 있었다. 증권가의 '찌라시' 같은 건 아니었다. 그이의 소식은 신속하고도 '엄선'된 것들이어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기 유머'가 안왔다. 왜 뜸한가 싶어 물었더니 "그런 거 전하다 뒷조사당할까 싶어 안보낸다"며 블로그와 페이스북도 달포 전쯤부터 닫아버렸다고 한다. 국정원댓글사건에 이어 트위터 5만 여건이 검찰수사로 역추적 확인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한 일들도 뒷조사 당할 것 같아 아예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촛불집회 같은 데는 얼씬도 않는, 자칭 '표준적 소시민'이다. 오늘 아침, 어느 한 소시민의 '소심함'을 빌어 거창하게 표현의 자유 운운하려는 건 아니다.
"국정원직원의 트위터 글은 하루 유통되는 트윗의 0.02% 밖에 안되는데 무슨 문제냐"는 여당 실력자에다, 급기야 "간첩이 설치는 것 보다는 유신시대가 좋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마당이니, 그 지인은 "세상이 옛날로 돌아가는구나. 어설피 까불다 트집잡혀 경을 치르느니 아예 입을 닫자"라고 생각했음직하다.
작년 12월 11일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젊은 여성이 고발당하면서 시작된 댓글사건논란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불거지자 지난 대선의 '순결성'을 의심하는 것, 합리적 의문이다. 그런데 그걸 수사하는 검찰의 높은 사람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짤리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년 가까이 온 나라가 댓글사건으로 날이 지고 새는 데다, 유수의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물론 바티칸에서 조차 '한국의 대선 부정'을 거론하기 시작했는데도, 전국 각지에서 민주주의 수호 집회가 열리고 있는 시간, 잠실야구장에 나타난 대통령이 우아하게 시구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이 겁 먹고 납작 엎드려 귓속말만 속닥이게 된다면, 사회 안녕을 되찾고 질서가 바로 서며,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룩된 거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국민통합의 저해이자, 국가에너지의 분산이며, 미래로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사장시키는 것이다. 강요된 침묵, 가장된 고요는 동맥경화의 다른 이름이다.
정보기관원에 의한 트윗이 전체 트윗의 0.02%에 불과하니 문제될 게 없다? 그럼 이건 어떤가? 불량부품 눈감아주는 댓가로 10억원쯤을 뇌물로 받은 자가 "10억 원은 국내 총통화량 19조원의 0.00005%에 불과하니 문제될 게 없다"고 항변한다면? 며칠 후면 수능시험일이다. 당신의 아들이 시험장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한 쪽에서 커닝들을 하고 있다. 보다 못한 아들이 감독관에게 "커닝 단속 잘 해달라"고 했는데 감독관이 "자네, 지금 이 시험에 불복하는 건가?"라며 묵살했다고 치자. 그럼 당신은 아들에게 "모른 척 할 일이지 왜 나섰느냐"고 나무랄 것 인가?
그 지인이 안 보내줘서 필자가 검색해봤더니 요즘 뜨는 풍자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제목은 . "선생님 :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학생 : 댓글 다십니다. 선생님 : 나랏일 하시네. 누나는 뭐하시노? 학생 : 문 잠그고 방콕해서 지는 잘 모릅니더. 선생님 : 대통령 만드시네. 학생 : -.-" 이런 풍자가 클릭 수 상위에 오르지 않는 게 국민대통합의 출발점이다. 대통령의 국민대통합공약을 아직 허언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필자를 순진하다고 탓하지 마시기들 바란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될 검찰총장과 국정원댓글사건 수사팀장을 불러 '성역없는 수사'를 공개 지시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이 분열상을 끝내는 첩경이라고 본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의 '꿈'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한다. "누구 찍으라는 권유 없이 단지 투표 독려하려고 제자들에게 피자 사줬던 교수가 유죄(선고유예)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댓글 달고 특정후보에 유리하게 몰고 간 국정원사건은 반드시 관련자 실형으로 처벌하겠지' 라는 꿈을 꿔본다." 이게 김 교수 혼자만의 꿈일까?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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