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대안학교 교직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는 등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용노동부는 국정원의 요구에 직원들의 고용보험 이력 등 개인 정보를 제공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실은 28일 "국정원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이 지난해 8~11월 다섯 차례에 걸쳐 주고 받은 공문을 제출 받은 결과, 국정원이 광주ㆍ전남 지역 대안학교들을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실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해 8월 광주고용청에 보낸 '업무협조 의뢰'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사건 수사 목적"이라며, 광주ㆍ전남 지역의 대안학교인 지혜학교 늦봄문익환학교 곡성평화학교의 직원들에 대한 고용보험 자료를 요청했다. 이에 광주고용청은 사업장 조회가 안 되는 곡성평화학교를 제외한 두 학교 전 직원의 주민번호와 성명 월급 고용보험이력 등의 개인정보를 국정원에 제공했다.
세 학교는 모두 비인가 대안학교로 인문학이나 사회참여 교육을 활발하게 하는 곳들이다.
솔성수도회가 설립한 중ㆍ고등 통합 6년 과정의 지혜학교는 철학ㆍ인문학 중심의 대안학교로 12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학생들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는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늦봄 문익환 목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을 각각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아 설립된 늦봄문익환학교와 곡성평화학교 역시 공동체와 생태 등을 중시하는 대안학교다. 늦봄문익환학교는 졸업식에서 6ㆍ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가 통일부를 거쳐 보내온 축사를 읽었다가 지난 해 보수언론의 보도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장하나 의원은 "고용부 산하 서울ㆍ부산ㆍ중부고용청은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 국정원이 전국의 대안학교를 대상으로 자료 요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정원과 고용부가 대선을 앞두고 공안몰이를 하려 민간단체를 사찰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혹에 광주고용청 관계자는 "수사상 필요에 의한 국정원의 통상적인 업무협조 요청일 뿐 사찰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그간 대안학교 교직원들이 연루된 공안사건은 알려진 적이 없어 사찰 의혹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교직원의 개인 정보가 국정원에 전달된 학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장종택 지혜학교 교장은 "교육과정에서 정치토론 한 번 해본 적 없이 오로지 칸트 플라톤만 가르쳤는데 사찰을 했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며 "학교에 재직중인 33명의 교사 중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이승요 늦봄문익환학교 교장도 "작은 대안학교까지 국정원이 사찰을 하는 시대에 산다는 게 창피할 뿐"이라며 "지난해 보수언론의 색깔공세 이후 국정원에서 사찰을 시작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대안학교들은 국정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대안교육 교사 학부모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 대안교육연대의 이우규 정책위원장은 "대안학교들이 제주 해군기지 논란, 4대강 사업 등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자 사찰의 대상이 된 것 같다"며 "다른 대안학교에 대한 추가 사찰 여부를 확인한 뒤 공동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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