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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9> 디자이너 노라노의 한국 최초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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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9> 디자이너 노라노의 한국 최초 패션쇼

입력
2013.10.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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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0월29일 오후 2시, 양장과 한복으로 한껏 멋을 낸 귀부인들과 말끔한 양복차림의 중년 사내들이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인 서울 반도호텔 다이너스티 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잠시 후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하나 둘 관객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이듬해 열린 제1회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영예의 진에 당선된 박현옥양이 체크무늬 양장에 검은 장갑을 끼고 처음 무대를 걸었고 배우 최은희에 이어 그 해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이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하자 객석에서는 탄식과 함께 갈채가 터져 나왔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피아노 연주는 당대 최고 인기 연주자이자 '마포종점''초우'등의 명곡을 만든 작곡가 박춘석씨가 맡았고 사회는 언론인 이진섭씨의 몫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열린 이 날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일찍부터 행사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든 쇼를 구경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총 6명의 모델이 50여 벌의 의상을 선보인 이 날은 한국의 패션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무대의 주인공은 모델들이 아니라 28세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였다.

노라노는 1928년 한국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설립한 아버지 노창성과 역시 한국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인 어머니 이옥경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군 위안부 징집을 피해 열일곱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고된 살림과 시부모의 간섭은 소설가를 꿈꿨던 소녀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청춘을 낭비할 수 없었던 그녀는 2년 만에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47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노명자'라는 본명과 이별했다. 대신 학창시절 즐겨 읽었던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주인공 이름을 따 '노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미국과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서울 최고 상권인 명동에 '노라노의 집'을 열고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에서 순수 국산 원단만을 사용해 성공을 거둔 노라노는 이듬해 다시 반도호텔 옥상에서 야외 패션쇼를 열어 전 국민에게 패션 붐을 불러 일으켰다.

67년 가수 윤복희가 입고 나와 화제를 일으켰던 짧은 미니스커트와'커피 한 잔'을 부른 펄 시스터즈의 판탈롱 스타일도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쳤다. 당시 유일한 디자이너였기에 은막의 톱스타였던 문희 엄앵란 문정숙 여운계 등도 앞다퉈 노라노 의상을 찾았다.

그녀의 패션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라노'가 31일 개봉한다. "1947년 내 나이 스무 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내레이션도 본인이 직접 맡았다.

올해 나이 85세, 끊임없는 열정으로 가득 찬 그녀의 건강한 삶이 부럽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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