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3일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가 열린 오클랜드 콜리시움. 전광판에는 오클랜드에서 2,900㎞ 떨어진 캔자스시티에 사는 14세 소년 닉 르그랜드가 나타났다. 닉이 집에 설치된 작은 모형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자 경기장 마운드의 로봇이 센서로 원격신호를 전달받아 시구를 했다. 희귀 혈액장애를 앓아 경기장을 찾을 수 없는 닉을 위해 오클랜드 구단이 마련한 생일선물이었다. 선수와 관중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 메이저리그에서 시구의 의미는 특별하다. 구단들은 마운드에 아무나 세우지 않는다. 초특급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다. 시구행사를 아무 때나 갖지도 않는다. 개막전이나 야구계에서 기념하는 날 또는 구단 역사에서 상징성이 있는 날에만 한다. 뉴욕 양키스는 시구행사를 한 시즌에 10~20회로 제한한다. 그래서 시구마다 특별한 의미와 감동이 담긴다. 파울 볼을 잡으려다 사망한 소방관 아들의 시구, 두 팔이 없이 태어난 장애인의 발 시구, 이라크 참전용사의 시구, 사상 최초의 우주정거장에서의 시구….
▲ 우리 프로야구 시구는 연예인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고만고만한 여자 아이돌과 탤런트, 영화배우 등 연예인들의 독무대나 다를 바 없다. 눈요기 시구로 하루 아침에 유명세를 타는 사례가 잇따라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섹시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한 클라라는 "시구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혼신의 역투로 '개념 연예인'이 된 홍수아와 전 리듬체조선수 신수지의 '곡예 시구'도 화제가 됐다.
▲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한 대통령은 모두 4명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 시구는 거의 대통령 몫이다. 야구광이던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여덟 차례 시구를 했다. 박 대통령의 깜짝 시구에 눈을 모로 뜰 일은 아니다. 다만 떨어지는 지지도를 만회하거나 복잡한 정국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아니었으면 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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